"'선거의 계절' 와도 장애인은 또 투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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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 와도 장애인은 또 투표 못한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4.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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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예외조항' 문제, 발달장애인 선거지침 갑자기 폐기
시각장애인 공보물 매수 제한, 수어통역 한계점 지적
"그림투표용지 도입, 공적 조력인 배치 등 대책 마련 필요"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보궐선거와 대선, 지방선거가 연달아 이어지는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지만 장애인의 참정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아 '선거의 계절'의 큰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투표소 이동 문제, 장애인 선거 보조 등의 헛점이 계속 나오고 있고 토론회 수어 통역도 수어통역사 한 명에 의존하다보니 심지어 특정 후보의 발언만 통역이 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어 투표 참여는 물론 후보자 결정에도 어려움을 겪는 일이 지속되고 있어 앞으로 있을 대선, 지방선거를 위해서라도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201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공직선거관리규칙에 '투표소는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등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한다'(제67조의2)고 규정해 장애인의 투표 편의를 보장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이에 따라 투표소 설치시에는 투표소 입구에 이동약자를 보조할 투표사무원 등을 배치하거나 임시 기표소를 설치하는 등 이동약자가 투표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규정 옆에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예외 조항을 달아 투표소 설치 및 편의시설 설치를 피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2층 공간에 투표소를 마련하는 등 전체 투표소 중 10% 가까이가 여전히 장애인의 접근성이 제한되어 있고 장애인 단체들은 "권리를 시혜적 조치로만 바라보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발달장애인의 경우 기표시 가족이나 활동지원사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지침이 5년간 내려졌다가 지난해 총선부터 갑자기 폐기됐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이 투표장에 갔다가 '조력자와 함께 투표할 수 없다'며 투표장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2일 오전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열린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은 투표 행위가 일상적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당황할 수 있다. 부스에 들어갔을 때 절차상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선관위에서 사적으로 투표행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발달장애인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들어가자 아예 지침이 사라져버렸다"면서 "공적 조력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답변이나 대안 제시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선거 공보물을 제작한다고 하지만 매수가 제한되어 있고 점자로 기록한 내용도 일부에 불과한 사례가 많아 시각장애인들이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고 점자투표용지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여전히 시각장애인에게 일반투표용지가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9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거소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점자투표용지 등을 포함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권고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 고령층 등을 위한 '그림투표용지' 제안도 나왔지만 선관위는 요지부동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 1항 및 2항에는 국가 및 지자체와 공직선거후보자 및 정당은 장애인이 선거권, 피선거권, 청원권 등을 포함한 참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차별을 하면 안 되며 국가 및 지자체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 및 설비, 참정권 행사에 관한 홍보 및 정보 전달,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 및 보급, 보조원의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책임져야하는 주체들은 '시간적 제약, 제작 부수 증가 및 이로 인한 예산 증가' 등의 이유를 들면서 '선거법이 개정되어야한다'는 입장만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한편 공직선거법 72조 2항에는 '후보자 연설 방송에서 청각장애선거인을 위해 한국수어 또는 자막을 방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방영해야한다'는 의무가 아닌 '방영할 수 있다'로 권고성에 그치고 수어와 자막 동시 제공과 거리가 먼 내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2~3명 이상의 후보자가 나오는 토론회의 경우 한 사람이 모든 참석자를 전담해야하는 문제가 생기고 수어통역자의 위치 때문에 자칫 특정 후보에 시선이 고정되고 누구의 발언인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MBC 100분 토론'으로 방영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100분동안 수어통역사 한 사람이 통역을 진행해 양측의 공방이나 발언의 특성들을 농인이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수어통역사 화면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밑에 고정되어 있고 수어통역 화면이 작다보니 시청자들이 오 후보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누구의 발언인지 어려운 경우 오 후보의 발언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장애인단체들은 그동안 꾸준히 선거 방송의 수어통역을 방송사 등에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방송사는 똑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방송에 출연할 경우 두 명의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배치할 것을 계속 요청한다. 그래야 농인 시청자들이 공정하게 후보를 판단할 수 있고 어느 후보의 발언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방송사의 사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인 유권자들의 알권리요 참정권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장애인단체들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림투표용지 도입 △ 발달장애인 등의 유권자를 위한 알기 쉬운 선거 정보제공 △공적 조력인 배치 △지역 설명회 개최 △ 선거 전 과정에서의 수어통역과 자막제공 의무화 △시각장애인 점자공보안내물 비장애인과 동등한 제공 의무화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투표소 선정 △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등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정권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서 "선거시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면담 또는 간담회를 통해 개선을 요구하고 선거시기 모니터링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으로 개선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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