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더 '약하게 하라'는 경제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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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더 '약하게 하라'는 경제단체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4.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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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등 6개 단체 시행령 제정 건의서 제출 "합리적 제정 필요"
직업성 질병 기준, 질병 범위 등 축소 '종사자 잘못 재해' 거론도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노동자 등 미적용 가능성 "기업들 책임 무시" 비판
지난 1월 경총 등 경제단체 대표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지난 1월 경총 등 경제단체 대표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희생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 유예 대상을 늘리고 책임자 처벌 및 손해배상액을 낮추는 등 '친기업'적인 내용으로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최근 경영계가 이 법의 보완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정부에 건의하면서 이를 정부가 수용할 경우 기업이 책임을 피해가는 상황 등이 나오면서 법안의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시행을 3년 유예하며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을 없애는 등 법안의 취지에 맞지 않는 내용으로 노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산업재해의 대부분이 영세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업장을 제외 혹은 유예하고 발주처와 임대인을 책임과 처벌에서 제외시킨 점, 인과관계 추정 조항(기업주의 법 위반이 반복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사측의 산재 은폐 시도가 있을 시 유죄로 추정하는 것)을 삭제한 점 등 기업의 처벌을 줄이는 방식으로 법안이 통과되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닌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했다. 

지난 3월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부작용 우려를 들며 "내년 법률 시행 전 반드시 재개정이 필요하다"며 재해 범위 축소, 처벌 완화, 면책규정 신설 등을 요구했다. 당시 이들은 '사망자 1명 이상 발생'을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한 내용을 '동시에 2명 이상 또는 1년 이내에 2명 이상 발생'으로 축소하고 '경영책임자'를 1인으로 한정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면책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대로 될 경우 故 김용균씨 사고나 '구의역 김군' 사고 등 젊은 노동자가 홀로 일하다가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들은 모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고 처벌 또한 받지 않는 것으로 되면서 '기업의 노골적인 노동자 무시'라는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고 경영책임자 축소는 물론 면책까지 거론한 것을 두면서 기업이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한다는 비난 역시 받아야했다. 

경제단체들은 지난 13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건의서를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에 제출했다. 이들은 건의서에서 "법 시행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보완입법이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한다"면서 "정부가 마련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도 경영책임자 역할을 실현가능한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합리적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안을 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이 중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를 '업무상 사고와 유사한 화학물질 유출 등에 의한 질병자'로 한정하고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 진폐, 소음성 난청, 직업성 암 등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범위에서 제외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에는 또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 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했는데 경제단체들은 "법률 내용만으로는 법안에 나온 '특정 원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경영책임자가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시행령에 '특정 원료'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만으로 교육을 받도록 강제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경영책임자가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로 한정해야한다"고 밝혔으며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장 명칭, 발생 일시 및 장소, 재해 내용 및 원인 등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는 "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로 명확히 하되 산업안전보건법상 공표 대상과 중복되는 경우는 제외할 수 있도록 단서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종사자의 과실이 명백한 재해의 경우는 경영책임자가 조사 및 처벌을 받지 않는 규정도 포함해야한다는 주장도 같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13일 성명에서 "건의서는 직업성 질병 기준, 질병 범위 등에 대해 한마디로 책임은 피하고 혹시라도 문제가 될 사항이 있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고 보자는 꼼수로 채워져 있다. 더불어 종사자 과실이 명백하면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 조항 등을 요구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 취지가 산재사망은 기업의 구조적, 조직적 범죄라는 시대적 인식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윤만 취하고 사업장 안전은 책임지지 않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면서 "사업주로서 그리고 기업경영 책임자로서 산재와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한 경총을 포함한 6개 경제단체에 경의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경제단체들의 주장은 법안 적용을 '사고'로 한정하고 노동 강도 및 사용 원료 등으로 인한 질병에 대해서는 책임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사업장 내에서 백혈병을 얻은 노동자들, 수은 중독 등 각종 원료 중독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 중대시민재해를 '특정 원료'로만 한정지을 경우 가습기 살균제나 세월호 참사 등 재해를 일으킨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어 경영계가 자신들의 책임을 없애기 위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논의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현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지난 보궐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이 심판을 받은 이유가 바로 '개혁의 실종'이었고 이를 보여준 사건 중 하나가 '누더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통과였던 만큼 경제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노동계는 물론 청년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정부가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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