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100년 시행 '재산비례벌금제', 한국은 어떻게?
상태바
핀란드 100년 시행 '재산비례벌금제', 한국은 어떻게?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4.26 16:43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행 벌금제 형편 어려운 사람에게 큰 부담 '형벌도 빈부차'
조국 장관 제시했지만 유명무실, 지난해 12월 법안 발의
이재명-윤희숙 설전으로 주목, '재산뺏기' 프레임 우려
지난 2015년 한 장애인 활동가가 벌금통지서를 들고 벌금형에 항의하며 '노역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5년 한 장애인 활동가가 벌금통지서를 들고 벌금형에 항의하며 '노역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벌금을 일시불로 내는 '총액벌금제'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이로 인해 노역형을 가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벌금을 소득이나 재산에 연동해서 정하는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최근 다시 나왔다. 이를 두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현행 벌금제에 대한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벌금을 일시불로 내는 '총액벌금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소득이나 재산 등에 상관없이 법에 의한 벌금 액수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벌금 300만원'이라도 부자에게는 가볍게 내고 끝내는 금액인 반면 빈자에게는 큰 돈이기에 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다녀야하고 결국 돈을 내지 못해 수배를 당하거나 노역을 사는 등 벌 역시 '빈부의 차이'가 난다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벌금을 한 달 안에 일시불로 내야한다는 것 역시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어 '징역보다 벌금이 더 무거운 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회 시 교통방해 등으로 거액의 벌금을 선고받은 장애인들이 '벌금 탄압'을 비판하며 스스로 구치소로 가는 '노역투쟁'을 전개하는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벌금 분납, 사회봉사 대체 등으로 이 문제를 풀려 했지만 분납의 경우 3~6개월로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사회봉사 역시 생업을 포기하는 조건이 걸려있어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를 계기로 인권연대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벌금낼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을 운영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효과를 보고 있지만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진행 중인 '일수벌금제'를 모델로 한 재산비례 벌금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일수벌금제는 범죄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정하고 그 벌금을 일별로 나누어 매일매일 해당 금액을 내도록 하는 제도로 핀란드가 1921년 최초로 도입한 이후 스웨덴,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지난 2019년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안에 이 제도를 포함시키면서 실현 여부가 주목됐다. 하지만 곧바로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조 전 장관이 물러났고 재산비례 벌금제 논의도 흐지부지해졌다. 이후 지난해 12월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득과 재산에 따라 최종 벌금액을 정하고 일수 정액을 내는 방식으로 벌금을 내는 것을 골자로 한 '형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 제도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은 지난 25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SNS를 통해 재산비례 벌금제의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해야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집행되어야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특히 벌금형이 그렇다"면서 "핀란드는 100년전인 1921년, 비교적 늦었다는 독일도 1975년에 도입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76.5%가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찬성할 정도로 우리나라도 사회적 공감대가 높다"고 밝혔다.

그러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핀란드에서는 2015년 과속을 한 고소득 기업인에게 5만4000유로(약7000만원)의 벌금을 매겨 화제가 됐는데 이런 벌금차등제는 '소득'에 따라 차등한다. 벌금은 결국 소득으로 내야하는데 이재명 지사는 핀란드나 독일이 재산비례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굳이 거짓을 말하며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지사 정도 되시는 분이 '소득'과 '재산'을 구별하지 못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벌하고 싶은 것이 의도일지라도 최소한 근거와 논리를 가져야한다"고 받아쳤다.

이 지적에 이 지사는 "재산비례벌금제는 벌금의 소득과 재산 등 경제력 비례가 핵심개념이고 저는 재산비례벌금제를 '재산에만 비례해야한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득과 재산에 비례해야함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누군가의 발언을 비판하려면 발언의 객관적 내용과 의미 정도는 파악해야한다. 재산비례벌금제의 의미와 제가 쓴 글의 내용을 알면서도 왜곡해 비난할 만큼 악의는 아닐 것으로 믿는다"면서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에게 한글독해 좀 가르치십시오"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또다시 "'재산비례벌금'이란 재산액에 비례해 벌금을 매긴다는 것으로 이제와서 '내가 말한 재산이란 소득과 재산을 합한 경제력이었다'라고 한는 건 단지 느슨한 해석 정도가 아니다. 소득과 재산의 구분이 정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라면서 "벌금액에 재산을 고려하는 것은 찬반 여부 이전에 이것이 얼마나 큰 철학의 차이, 정책 방향의 차이를 내포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아야한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이로 인해 재산비례벌금제 속 '재산'이 '재산'을 의미하는지, '소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재산과 소득을 모두 아우르는지가 논쟁의 중심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논쟁은 '부차적인 것'을 놓고 하는 것일 뿐, 재산비례 벌금제의 취지 및 구체적인 방안 모색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재산'과 '소득'을 구분하려는 것이 지산비례벌금제를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벌금을 물리는 식으로 정부가 재산을 가로채려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벌금을 안 내도록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벌금형을 받는다해도 소득 및 재산 차이로 형벌에도 불평등이 초래된다는 점이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당국에서 '번거로움'을 이유로 거부할 가능성이 있고 앞서 지적한 대로 '재산뺏기' 프레임으로 몰려갈 경우 반대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