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원 '사전검열' 논란, 반복되는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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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원 '사전검열' 논란, 반복되는 '블랙리스트'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6.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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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흡 작가 작품 활용 포스터에 '전두환 찢' 문구 삭제
문화원 "담당자 실수" 광산구청 "실무 담당자 요청 확인"
문화단체 "국가범죄를 일탈, 부정행위 정도로 정리하니 문제 반복"
광주 아시아문화원이 하성흡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전두환 찢' 문구를 삭제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정상회시민연대
광주 아시아문화원이 하성흡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전두환 찢' 문구를 삭제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정상회시민연대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광주 아시아문화원이 5.18 민주화운동 41주기 특별전시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동의 없이 특정 문구를 삭제하는 '사전검열'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아시아문화원과 광주 광산구청은 '직원의 실수'였다며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문화단체들은 '블랙리스트의 재발'을 단순한 실수로 여기는 이들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아시아문화원은 5.18 41주기를 맞아 특별전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하성흡의 수묵으로 그린 열사의 일대기'를 추진했다. 아시아문화원은 이 특별전을 홍보하기 위해 하성흡 작가의 작품 1점을 활용해 포스터로 제작했다. 이 그림은 차에 올라탄 광주 시민들이 유인물을 뿌리는 모습을 담았으며 차 앞에는 '전두환을 찢...'이라는 문구가 씌여져 있었다.

그런데 아시아문화원의 포스터에는 '전두환을 찢...'이라는 문구가 사라진 채 흰 종이 상태로 그림이 나왔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정상회시민연대는 지난 26일 성명에서 "아시아문화원이 자체 검열을 했던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문화원은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전 과정을 공개하고 5.18 관계자와 지역 예술인, 광주시민에게 정중히 사과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아시아문화원은 즉각 "전시 홍보를 위해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포스터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실수로 특정 문구를 삭제해 게시했다"면서 "문제를 인지한 즉시 곧바로 원작대로 게시하고, 하성흡 작가와 윤상원열사기념사업회에 경위 설명과 사과를 했으며 작가는 사과를 수용해 전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오월정신의 구현을 위해 노고 중인 지역 민주사회에 누를 끼친 점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아시아문화원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자체 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2일 광주지역 문화단체들은 "광산구청이 '전두환' 문구 삭제를 최종 요청한 기관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이번 전시회의 주최, 공동 주관 기관인 광산구청이 아시아문화원의 삭제 과정을 동의했고 전시회 운영 용역 수의계약을 체결한 홍보업체 대표에게 해당 문구 삭제를 최종 요청했다. 광산구청이 윤상원 열사 정신계승 사업을 구정의 핵심 성과로 홍보하면서도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광산구청이 결과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광산구청은 입장문을 통해 "아시아문화원이 홈페이지 게시 등을 위해 작품 내 '전두환 찢'' 문구를 삭제해달라고 한 요청을 실무 담당자가 제작사에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에 휩싸인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양 기관이 사과의 뜻을 표하기는 했지만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관들이 모두 이번 문제를 '담당자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사건의 본질과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특히 전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논란'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와 문화기관이 과거의 사전검열을 재현했다는 것은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이후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지난달 27일 성명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의 반복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사후 대응 과정과 연결된다. 정부의 주도하에 수천 명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감시·검열하고, 배제 차별하기 위하여 수많은 공공기관이 총동원된 국가범죄였음에도 가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블랙리스트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제도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이 블랙리스트의 주모자 김기춘, 조윤선 등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국가범죄를 축소한 가벼운 처벌을 하는 것조차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고 형사기소 대상인 공무원 처벌 또한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국가는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마치 몇몇 사람들의 일탈과 부정행위 정도로 정리해버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블랙리스트 가담자 중에는 처벌을 피한 이들은 물론 다시 요직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처벌이 경미했고 일련의 사건들을 '일탈'로 판단하고 무마했던 관행이 이번 사전검열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주장이다.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예술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발의가 됐지만 이 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고 법안이 잠드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검열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청와대가 아시아문화원 민주평화교류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던 이경윤씨를 문화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광주 문화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사전검열 의혹을 받은 아시아문화원에 재직 중인 인사인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법인화를 주장한 인물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이전 정부의 문제를 고쳐야함에도 불구하고 고치기는 커녕 계속 이어가는 정부의 모습은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갔다는 아쉬움을 주고 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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