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해자 사망 '공소권 없음'…과연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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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가해자 사망 '공소권 없음'…과연 최선일까?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1.07.0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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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내가 설 자리는 없다고 느끼게 했다. 그 속에서 내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나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나는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사진=시사주간DB
 최근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DB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지난 3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서 토로한 내용이다. 

최근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면서 과거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발언이 새삼 떠올랐다. 

최근 인천의 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에 선 여성의 등에 소변을 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2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고, 성희롱 발언 의혹에 대해 감찰 조사를 받아 연락이 두절된 육군 간부 역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로펌)의 초임 변호사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던 한 변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처럼 피의자가 사망하면 경찰은 수사를 중단한 뒤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린다. 검찰 역시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피의자가 숨지기 전까지 진행됐던 수사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다. 

피의자가 없으면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고 방어권 행사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 수사해 봐야 실익이 없는 사건에 한정된 수사력을 마냥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소권 없음'은 경찰의 수사, 검찰의 기소, 법원 재판까지 피의자 처벌을 위해 거치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의 과다한 사용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한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피의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범죄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망한 로펌 변호사 성폭력 피해자 측 변호인도 여기에 해당한다. 

로펌 변호사 성폭력 피해자 측 변호인은 변호사 사망 이후 경찰에 "그동안 진행된 수사 결과를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해당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법조계 내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린 사건으로 주목받았지만 피의자가 사망하자 시선은 피해자 측으로 향했고, 피의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 즉 '2차 가해'로 이어졌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피의자 사망에 의한 '공소권 없음' 처분과 별개로 수사는 계속돼야 하고, 그 결과 역시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살도, 사고사도 아닌 가해자 자살을 이유로 이미 이뤄진 수사내용도 발표하지 않는 것은 수사기관이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를 없는 일로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단순히 가해자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기존에 이뤄진 수사마저 무마시켜버리는 관행은 피해자를 2차 가해에 빠뜨리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측의 이 같은 요청에도 수사 결과 통보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정치적 파장이 컸던 박 전 시장 사건은 관련 사건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로 간접적이나마 피해가 인정됐지만 개인 간의 사건에서 '공소권 없음' 처분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수사기관을 찾은 피해자를 좌절시키기 충분해 보이는 이유다.  

'공소권 없음' 처리 관행이 이처럼 피해자를 좌절시키고, 가해자에겐 극단적 선택이 죄를 덮어준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모 대학 로스쿨 교수는 피의자가 죽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피고인이 사망하면 '공소기각 결정'으로 곧바로 끝나버리는 현재의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 재심에서는 피고인이 사망해도 재판이 가능하고, 철옹성 같았던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이 없어도 증거가 확보되면 기소해 비록 형집행은 하지 못하더라도 형사소송의 이념인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다른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무고로 인한 억울함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피의자 사망 이후 수사를 어떻게 마무리짓고, 결과를 알리는 기준을 세우는 것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범죄를 끝까지 밝힐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피해자는 진실을 위해, 가해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을 피하지 않을까.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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