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으로 편견을 깨는 청각장애인 유정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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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으로 편견을 깨는 청각장애인 유정아씨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1.07.2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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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춤’이라는 수어(手語)를 해 보이는 유정아씨. 사진=김철환
'무용’, ‘춤’이라는 수어(手語)를 해 보이는 유정아씨. 사진=김철환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이달 중순, ‘통일부 폐지론’을 두고 이인영 통일부장관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간의 설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가 인권감수성을 키우라는 지적을 했고, 이인영 장관은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감수성이 출발한다는 말을 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인권 감수성이 나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에 인권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의 출발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발언에는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없는 존중은 ‘형식’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이다. 그래서 감수성은 상대를 올바로 아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글의 방향을 조금 전환하려 한다. 장애인 문제를 나의 간접적으로 다루기보다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글로 옮겨보려 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애인은 열정적으로 예술의 삶을 살고 있는 청각장애인 유정아(46세)씨이다. 유정아씨는 현재 한국전통무용(한국무용)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무용을 공연하는 등 보존하고 계승 작업을 하는 진솔예술단의 이사도 맡고 있다.

◇ 농학교 입학과 부채춤의 시작

유정아씨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다. 구화학교에 입학했으나 듣지 못해 결국 2년 만에 자퇴를 했다. 당시만 해도 특수학교가 아니면 수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농학교에 1학년으로 다시 입학을 했다. 수어를 배운 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격이 밝아 잘 적응해갔다.

4세 경 TV에서 본 발레 때문이다. 발레공연을 본 후 발레를 하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발레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낼 무렵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학교에서 공연을 위하여 부채춤을 하게 되면서 ‘아, 이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채춤의 매력에 빠지고, 한국무용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된 것이다.

유정아씨는 부채춤을 더 배우고 싶었다. 엄마는 반대했지만 아빠는 지지해주었다. 지지를 넘어 당시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임이조(林珥調) 선생(한국전통무용가)의 한량무(진주 지방의 전통 무용극) 공연 소식을 접하고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갔다. 그때 유정아씨가 본 것은 별천지였다. 흰색의 무대와 화려한 조명, 무용이 어우러져 ‘별천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4일 평촌아트홀에서 열렸던 제32회 평양검무보존회 정기공연에서 진도북춤을 보여주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정아씨다. 사진=유정아
지난 7월 4일 평촌아트홀에서 열렸던 제32회 평양검무보존회 정기공연에서 진도북춤을 보여주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정아씨다. 사진=유정아

◇ 한국무용에 발을 들여놓다

그 후에도 아빠는 박은하 선생의 장고(杖鼓)춤 공연에도 데리고 갔다. 공연을 보면서 장고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접어버렸다. 듣지 못해 가락을 따라갈 수 없어서였다. 딸의 마음을 아빠가 어떻게 알았는지 안 들려도 연습만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고 늘 이야기해주었다. 청각장애인 복지기관인 청음회관에서 청각장애인 무용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딸을 데리고 갔다. 강사가 수어를 할 줄 알아 배움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청음회간에서 진행하던 모임이 없어져 버렸다. 실망이 컸다. 당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는데, 실망이 커 입시를 포기했다. 그렇게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충격이 컸다. 유정아씨가 청각장애가 있지만 무용을 할 수 있는 기반이자 울타리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다 아빠를 떠올리며 힘을 내고는 했다. 어려서 아빠와 같이 만났던 임이조 선생을 무조건 찾아갔다. 무용을 배우겠다고 하자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문제는 수강료였다. 그래서 연습시간 외에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2교대 근무를 할 때도 있었는데, 임이조 선생이 시간 조절을 해주어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콩나물이 물을 머금듯 나날이 실력이 늘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1월 임이조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 앞에 실력을 인정받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황망하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2의 아빠를 잃은 심정이라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보여주었던 진도북을 배우려 했지만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해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마음의 상처가 컸다. 장고도 마찬가지였다. 여건이 안 되어 장고도 끝까지 배우지 못했다.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한국농아무용단이 나름 많은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단원들이 시집을 가거나 개인 사정으로 참여를 못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할 수 없이 무용단이 문을 닫고, 유정아씨도 무용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는 언니의 도움으로 진도북춤으로 유명한 진윤정 선생을 만났다. 

배우는 방식이 달라 애를 먹었지만 열심히 배워 나갔다. 듣는데 어려움이 있어 애를 먹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한계를 절감하며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려 독하게 버텼다. 진동과 희미한 소리에 의지해 피나는 연습을 했다. 그 후 한 지역의 농아인단체 행사에 팀을 꾸려 공연을 했다. 진솔예술단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 갑자기 찾아온 불행 그리고 도전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갑자기 어깨와 팔에 힘이 빠졌다. 손에 쥔 볼펜이 스르르 떨어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병원에 갔다. 뇌혈관이 막혀 있었다. 급히 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모든 것이 백지상태가 되었다. 가족만 겨우 알아볼 뿐 모두가 낯설었다. 1년 동안 재활훈련을 하는 사이 주위에서 기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특히 엄마와 딸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공연 사진이야’, ‘이거 기억 안나, 공연대회에서 상 받던 날’....... 한국무용을 하던 모습들이 조금씩 기억에 떠올랐다. 그렇게 딸의 응원을 받으며 기억을 조금씩 회복했다. 

재활훈련이 어느 정도 끝나자 다시 한국무용 연습에 매달렸다. 동작이 잘 안 나오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은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유정아씨는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그동안 예술인으로 살아오면서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온 설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차별, 불이익이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장애인 인권활동을 지원하곤 한다. 그리고 늦었지만 사회복지도 공부를 하고 있다. 배워야 재대로 청각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공연장의 화려한 뒤에 숨겨진 유정아씨의 눈물과 땀, 비장애인들이 알지 못하는 애환, 이제는 사회에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한국무용을 통하여 얻은 경험과 영광들을 청각장애인들의 권익활동을 통하여 돌리고 싶다고 한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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