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사면복권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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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사면복권 돼야 한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1.08.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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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러시아의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농노해방을 지지하다가 니콜라스 1세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8개월 간 옥살이 후에 그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광장 한가운데 교수대에 섰다. 사형 담당 장교가 죄목을 낭독하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근 교회의 황금색 철탑과 아침햇살을 바라봤다. 그리곤 “이토록 빨리 또한 영원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할 순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스쳐가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의 단 1초도 낭비하지 않으리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죽음은 목전에 있었다.

마침내 신부가 마지막 성사를 하고 각자의 고해를 들었다. 두건이 그들의 얼굴을 덮었고 병사들을 소총을 들어 조준했다. 이제는 끝이었다. 그 순간 마차 한 대가 광장으로 질주해 들어왔다. 한 사람이 봉투 하나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사면령이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면은 지동설을 주장해 신성모독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오 갈릴레이 일 것이다. 죽음을 앞둔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포기하는 댓가로 사면을 받지만 결국 파문된다. 그러다 264대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450여 년이 지나 완전히 사면 복권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1842년 사망후 사면복권 전까지 지옥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면 복권 후 갈릴레오는 천국으로 갔다 한다. 지상에서 사면이 되면 하늘에서도 함께 사면 되기 때문이라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면은 사육신의 사면일 것이다. 억울하게 죽는 남이장군 사면도 눈에 들어온다. 세조 때의 무신인 그는 이시애의 난 등에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죽은 후 역모에 몰려 처형되었다. 그가 지은 시(북정가) 구절의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男兒二十未平國)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 後世誰稱大丈夫)’가 반역을 도모할 의도를 가졌다는 모함을 받아 죽었다. 순조 때 사면돼 관작이 복구됐다. 그러나 죽어서 사면받으면 무엇하겠는가. 허망한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사면은 백성들을 달래는 좋은 통치 수단의 하나이기도 했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거나 정부가 비난 받을 때 사면을 통해 민심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사면은 불완전한 법 제도를 보완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법은 늘 그렇지만 완전하지 않다. 이럴 때 초법적인 통치행위가 필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난다.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이며 손발을 묶고 있는 반족 짜리 석방이다. 글로벌 기업간의 경쟁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실질적인 회사의 대표를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 무엇하겠는가. 삼성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30%에 달한다고 한다. 사면과 함께 복권도 이뤄져야 세계무대에서 이 나라를 위해 제대로 뛰지 않겠는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국경제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반도체 전쟁 속에서 활로를 찾아내는 역할도 해달라”고 했다. 또 모더나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적극적 협의를 통해 백신 수급에 도움이 되도록 해 달라고 했다. 정녕 그렇다면 더 더욱 사면 복권도 이뤄져야 한다. 경영에 나서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 놓고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외국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도 삼성 같은 우리 기업들 위상 때문이다. 과거나 후벼 파는 정치인들 보다 국가 기여도가 훨씬 크다. 과거 정부에서도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을 사면해 왔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면을 그토록 아끼는지 모르겠다. 죽은 후 사면 받으면 무엇하는가. 지도자가 통큰 아량을 베풀 때 국민들은 저절로 따라간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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