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울 집값 상승이 '언론 탓'이라는 국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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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서울 집값 상승이 '언론 탓'이라는 국토연구원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1.09.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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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연구원이 집값이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언론보도가 늘어날수록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집값을 상승시킨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국토연구원이 집값이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언론보도가 늘어날수록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집값을 상승시킨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보배 기자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이 서울과 강남3구 집값 상승은 언론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거래 자료와 언론보도 추이를 살펴본 결과 거래량과 평균가격, 최고가격, 최고가격 경신 언론 보도 건수가 사람들의 기대가격 형성과 거래형태에 영향을 미쳤고, 언론보도 건수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는 지적이다.  

집값이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언론보도가 늘어날수록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른바 '쏠림현상'을 일으켜 집값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조정희 부연구위원은 지난 1일 '주택거래가격 결정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이해: 아파트 가격에 대한 기대형성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국내 아파트 거래에서도 과거 가격 변화가 향후 기대가격 변화를 유발해 거래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지 2014년 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실거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는 설명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아파트 평균가격, 최고가격, 최고가격의 경신 여부, 전체 거래건수, 최고가격 경신 관련 언론의 보도 건수 등이 '기대가격 증가 그룹 비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는 "그 결과 과거의 평균가격, 최고가격, 최고가격 경신과 관련 언론보도 등이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가격 형성과 거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고, 구체적인 영향은 지역별, 기간별로 상이하다"고 말했다. 

평균 가격 증가의 영향은 단기적으로만 유지되고 장기적으로는 사라지지만 2017년 이후 전국 단위 분석에서는 평균가격 상승 충격이 향후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장기적으로도 증가시킨다고 덧붙였다. 2017년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시기다. 

조 부연구위원은 특히, 서울에서는 최고가격 변화와 '최고가격 경신을 다룬 언론 보도의 증가'가 향후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2017년 이후 더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최고가격이라는 극단적 거래 행태가 미치는 영향이 전국보다 크고, 그와 관련한 언론보도 등 정보의 영향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서울 지역 3달 전 중위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한 사람들의 비율 변화. 사진=국토연구원 
서울 지역 3달 전 중위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한 사람들의 비율 변화. 사진=국토연구원 

조 부연구위원은 "부동산과 같이 공급이 제한적인 시장에서는 현재 시장의 가격이 시장 전체의 평균 기대가격을 반영하기 보다 극단적으로 높은 기대를 갖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가격이 10%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과 10% 하락한다고 예상하는 사람의 비율이 동일하다면 시장 전체의 평균 기대가격은 변하지 않지만, 공급이 제한적인 부동산의 특성으로 인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부터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시장의 거래가격은 기존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집값 폭등에 결정적 작용을 한 초저금리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을 분석하지 않은 해당 보고서에 야당이 먼저 질타하고 나섰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국책연구기관이 집값 상승은 언론보도 탓이라는 황당한 보고서를 내놨다"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상승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더니 '국민 탓' '언론 탓' 대잔치가 참으로 가관"이라고 꼬집었다. 

또 "국가정책은 연구하는 기관이라면 최소한 26전26패의 부동산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현실에 맞는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면서 "부디 남 탓일랑 그만두시라. '남 탓'은 '무능'의 다른 이름"이라고 일갈했다. 

야당 대변인의 지적처럼 국토연의 보고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의 정책과 금리, 수급, 실물경기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을 배제한 채 가격지표와 언론보도만 살폈다. 그것도 단순 비교하는 데 그쳤다. 

언론보도의 영향력에 대한 분석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물론 언론보도는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국토연이 지적한 최고가격 경신 보도는 거래가 발생한 이후에 나온다. 이미 아파트 매매 당사자간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 그 내용을 보도하는 것으로, 언론보도가 집값을 올린다는 분석은 앞뒤가 맞지 않다. 

더욱이 부동산 신고가격은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의해 모든 국민에 공시되고, 언론보도 역시 이를 바탕으로 나온다. 언론의 최고가격 경신 보도가 집값을 상승시켰다는 논리라면, 국토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이 집값을 올린다는 말도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보고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에서 내놓은 분석이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시장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해결책도 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연구원들이라도 냉철한 이성으로 국책을 정확히 분석해 정부에 조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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