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늦는다, 경의중앙선⋯욕먹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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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늦는다, 경의중앙선⋯욕먹는 이유는?
  • 이한솔 기자
  • 승인 2021.11.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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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PSD 관리·책임소재 떠맡은 기관사, 살기 위해 서행”
출근시간 경의중앙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사진=이한솔 기자
출근시간 경의중앙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사진=이한솔 기자

“철도노조 투쟁으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시사주간=이한솔 기자] 경의중앙선으로 출퇴근을 하는 기자가 매일같이 아침마다 듣는 안내 방송이다. 승객들은 하염없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일이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철도노조 투쟁으로 인한 지연이라 하지만 예로부터 경의중앙선은 연착이나 지연 등으로 말이 많았다. 유독 수도권 전동차 중에 경의중앙선에 대한 지적이 많다.

화가 난 이용자들은 기관사 칸 창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기관사를 위협하기도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예측 불가능한 열차 도착시간과 한번 떠나면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 때문에 회사에 늦는 일도 부지기수. 왜 유독 경의중앙선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기관사들이 게을러서 일까.

2일 전국철도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기관사에게 열차운행 외 업무를 관리하고 책임지게 하는 등 근로환경이 부적절해 준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때문에 열차가 지연되는 등 승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이한솔 기자
사진=이한솔 기자

고객과의 소통도 잘 되지 않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열차에 대한 민원을 접수해도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틀에 짜여진 멘트로 대답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코레일 측은 여러 지하철교통앱 등을 통해 실시간 열차운행현황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앱에 표시된 시간과 실제 열차 도착시간이 상이한 경우가 많다.

경의중앙선은 예로부터 이용환경에 대한 볼멘소리가 이어져왔던 호선이다. 오죽하면 SNS에 ‘경의-중앙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라는 커뮤니티가 형성돼 불편을 공유하는 실정까지 왔다.

승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철도공사 기관사에 근무하고 있는 관계자가 경의중앙선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며 게재되는 댓글마다 답글을 게재해 불만해소에 나서고 있다.

◇ 약속 안 지키는 경의중앙⋯야외 플랫폼에 승객은 ‘오들오들’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누리꾼들은 대체적으로 경의중앙선이 정해진 시간표, 즉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파주역 기준 출근시간대의 서울방향 열차 간격은 10분가량 차이가 난다. 이마저도 서울역행 열차와 지평·팔당·용문·덕소행 열차로 구분지어보면 열차마다 약 15~20분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때문에 경기지역 거주자들은 배차시간표를 보고 정확한 시간에 승강장에 대기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한다. 그런데 실제 열차가 오는 시간은 조금 빠르거나 늦는다는 것이다. 열차의 지연은 대개 연쇄적이라 누적될수록 오차시간이 커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경기→서울’ 승객보다 회차지점을 거쳐오는 ‘서울→경기’ 승객들은 오차가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승강장이 지하에 매립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 야외에 있다 보니 날씨 등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경의중앙선 열차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동안 승객들은 덥거나 추운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한다.

때문에 문산-용산 구간에 충분한 선로용량이 있으니 열차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 출퇴근 시간에는 모든 가용열차를 투입하고 있어 추가 투입할 차량이 없다”고 말했다.

◇ “내 청춘은 지하철에서 보냈네”⋯장시간 근로의 나라 ‘대한민국’ 통근까지 더 해진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수집된 교통카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 자료를 살펴보면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경우 ‘경기-인천 1시간 30분’, ‘경기-서울 1시간 24분’ 등으로 집계됐다.

대한민국은 OECD 통근 시간 기록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청년유니온이 발간한 ‘내 청춘은 지하철에서 보냈네’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OECD보고서에 의거해 스페인, 스웨덴 및 미국에서는 통근에 평균적으로 하루 약 20분이 소요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기청년유니온 관계자는 “특히 많은 인구가 서울로 통근하는 경기도의 경우 문제가 더더욱 심각하다”며 “장시간 근로의 나라 대한민국의 경기도민은 장시간 근로에 더해 통근이라는 이중고를 격고 있다. 장시간 근로를 마친 뒤에도 집까지의 귀가라는 대업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청년 시간 소득 빈곤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근 위해 평균 오전 6시 43분에 기상해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평균 오후 9시 17분으로 하루 일과를 유지하고 있다”며 “하루 평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14시간 36분이며,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 7시간 49분을 제외하면 자유로운 시간은 1시간 35분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투쟁, 파업 농성 아닌 기관사 셀프보호 ‘서행’⋯뭐가 문제길래?

열차가 지연되는 이유에 대한 질의에 코레일 관계자는 “전국철도노동조합 소속 서울지방본부 운전지부 조합원들의 준법투쟁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철도노조는 왜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열차가 지연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내용을 파악해보니, 기관사들이 직접 투쟁에 참여하느라 열차를 운행할 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운행에는 모두 정상 투입이 됐으나 기관사 본인들의 보호를 위해 기존보다 ‘천천히’ 운행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승강장 내 열차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PSD)시스템을 기관사들이 관리하는 역할과 더불어 책임소재까지 짊어지게 된 만큼 안전하게 운행한다는 것.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관계자는 “PSD가 생기면서 사고가 상당히 줄었으나 시설물이라 관리가 필요하고 설치 업체들도 6개나 되는 만큼 난립된 경향이 있어 시설물 오류가 많다”며 “경의중앙선 특성 상 야외에 설치된 만큼 거미줄이나 안개·눈·비 등 날씨 영향도 많이 받아 오류가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열차 선두에는 기관사, 후미에는 차장이 탑승해 관리를 도와줄 수 있었으나 현재는 기관사 혼자만 열차에 탑승한다.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 여부와 PSD 안전작동 등을 기관사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CCTV를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승강장 동태정도만 확인할 수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따라서 PSD와 열차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확인하는 현시장치가 있는데 연동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기계적인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즉 문이 열려있는데 닫혀있다고 표시되거나 반대로 잘 닫혔음에도 열렸다고 표시될 수 있다는 것. 현시장치만 믿고 열차를 출발시켜 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기관사 책임이 돼버린다는 것이 노조의 우려다.

더구나 이 현시장치를 기관사가 확인한 뒤 출발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 측 관계자는 “PSD 문 상태확인 장치와 출발반응 표시등이 전체 PSD에 설치돼 있다”고 답했다.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승객이 사고로 사망 시 기관사 책임은 더욱 막중해 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역무원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역마다 1인 인력 운영 환경의 역도 있고 무인역도 있어 난감하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관사 자격을 보유한 운전분야 인력을 파견 중이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지난 7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발표 이후 수송수요가 적은 22시 이후 운행열차 일부를 감축했으며 경의중앙선(경의선 포함)은 8회 구간을 단축했다. 노조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열차를 감축하는 정책도 어이가 없다. 열차를 줄여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오히려 혼잡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일산승무지부 관계자는 “기관사는 전차선에 무엇이 있는지도 봐야하며 선로도 봐야하며 신호도 봐야 한다. 직·곡선 속도도 유지해야하며 무전도 해야 하고 민원도 받아야 한다. 안내방송 지시가 있다면 해야 하고 시간표도 봐야 하고 문 열고 닫아야 하며 CCTV도 봐야 한다”며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기계적 발전으로 인해 인력을 줄였다지만 기관사를 보호할 수 있고 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PSD장애 경보등을 확대 설치하고 기관사가 PSD관련 업무를 이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 선로 위에 비닐·돌·동물 심지어 사람까지⋯“선거철마다 나오는 ‘급행’도 문제”

우선 열차가 지연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승하차 시 지체되는 시간이 중첩된다는 것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승하차 과부화 탓에 정해진 시간보다 더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2~30초 남짓일지 몰라도 다음에 정차할 역마다 반복되면 그 시간차는 더욱 커진다. 그렇게 지체되는 차를 또 뒤차가 기다리면서 점점 연쇄 지연된다.

지역 민원으로 인해 배치되는 급행열차도 지연의 원인이라고 기관사들은 꼬집었다. 철도 노조 관계자는 “지역 민원 때문에 급행열차를 많이 운행하게 되는데 사실 급행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선거철마다 지역구 의원의 영향이 있다”며 “급행이 빠를지 몰라도 완행열차는 그만큼 대피해서 정차해 있어야 하는데 대피하기 위해서는 일정 간격을 두고 미리 속도를 줄여야 한다. 이때 또 열차는 지연이 된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급행과 여객 등 정차패턴이 다른 열차가 같은 선로를 이용하는 경우 이를 고려해 열차운행 계획을 수립한다”며 “선로를 확장하는 것은 국가철도공단의 소관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상 열차인 만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철로 인근에 논밭이 많은 만큼 비닐하우스 비닐이 철길을 덮거나 날시 탓에 선로에 물이 차오르거나 자갈이 무너지기도 한다고. 이처럼 차가 한 대만이라도 지연될 경우에 경의중앙선은 우회할 여유 차선조차 없는 상황이다.

열차의 종착역에서는 모든 승객이 내려야 하지만 간혹 아프거나 주취상태의 승객이 내리지 않아 지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기관사들은 설명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만취한 여성 승객이 종착역에서 잠이 들어 깨지 않는다면 몸에 손을 대서 깨울 수도 없어 더욱 조심스럽다”며 “손을 뒤로 쥔 채로 오로지 말로만 깨워야 하는데, 이러다보면 뒷차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야외 선로인 만큼 돌이나 동물, 사람 등이 운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선택을 위해 선로 위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길고 야외에 깔려 있는 선로인 안전에 유의해 방호펜스가 필요하지만 없는 곳도 많다고 기관사들은 설명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시설의 기술기준에 의거해 국가철도공단의 개량사업을 위탁받아 선로변 방호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다”며 “2022년까지 전 구간 울타리 설치를 목표로 미설치된 곳을 우선으로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흔히 하는 말로 기관사가 책임을 지게 되면 (회사차원에서)피해가 가장 적다라는 말이 있다”며 “기관사 1명이 실수했다고 하면 넘어간다. 기관사 1명만 처벌하면 깔끔해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관사들이 계속 깐깐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SW

lhs@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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