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음 "'ADHD 작가' 털어내기, 결국 나와 나의 대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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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음 "'ADHD 작가' 털어내기, 결국 나와 나의 대화였죠"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2.03.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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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민정 기자] "영원한 혼잣말 같아도 쓴다는 행위는 결국 나와 나의 대화였다"('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중에서)

작가 정지음(31·필명)은 자신이 쓴 이 문장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한다. 전작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에서는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해 솔직하게 써냈다면 신작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빅피시)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모든 쓰기는 흩어지고  지나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기록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 '관계'에 집중한 신작, "관계 맺음은 괴리의 과정"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는 관계에 대한 에세이에 걸맞게 모든 에피소드에 타인이 등장한다. 자신이 지난 30년간 만나온 다양한 사람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담았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조차 자신을 "가장 가까운 남"으로 대한다.

그만큼 정 작가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흥미로운 소재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만나려고 태어난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사람은 생각보다 혐오스럽고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좋아하면서도 싫어지는 관계를 맺는 괴리의 과정은 개인적이지만 다른 이들도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관계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관계'를 주제로 한 데 엮은 책을 만들자는 제안은 출판사에서 먼저 왔다. 기존에 브런치 플랫폼을 통해 연재하던 글과 몇 개의 글을 추가하고 다듬어 33편의 에세이가 실린 책이 완성됐다.

달라진 주제만큼 이번 책의 분위기도 전작과 큰 차이를 보인다. 재치 있는 표현과 문장은 여전하지만 한결 감성적인 톤으로 조절됐고 글의 길이도 짧아졌다. 그는 이번 책에서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각자가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전작을 통해 얻은 피드백을 반영했다고 했다. 전작은 많은 주목과 인기를 얻었지만 '글이 정신없다'거나 '거칠고 텐션이 높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도전해보자고 마음 먹고 만든 책은 그가 "힘을 뺄 만큼 빼고 쓴 최선"이다. 

◇ '성급한 과몰입의 실패', 가끔은 미칠 수도 있지

감성적이라고 해서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정지음의 관계 맺음 속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존재한다.

 "충고를 박살 내는 식으로 세상을 배워갔다"는 그는 "인생 개혁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남들처럼 우정도 나누고 효도도 하고 연애도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실패하지 않게 된 건 아니지만 실패에 너무 흔들리지 않는 데 성공했다"며 프로젝트의 결과를 밝혔다.

시행착오는 "성급한 과몰입의 실패"라는 표현으로도 정리된다. 조바심이 나서 과하게 달려들다가 실패를 반복해왔다. 그는 자신의 돌아보며 "느긋한 방치의 성공"이라는 해답을 찾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그는 "지금은 둘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실패해서 방전이 되면 방치하고 다시 몰입할 체력을 채우고 하는 식이다"라며 지금 혼란스러운 건 "두 방식을 오가는 횟수"가 많아졌을 때라고 설명했다.

◇ 회사생활, 우정, 죽음…수많은 관계 속에 수많은 정의들

책에 언급되는 정지음이 맺은 여러 관계에는 서로 다른 속성이 있다. 우정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포용함으로써 결국 아름다워지는 것"이고 부모와의 관계는 "낳아준 점에 대해선 감읍하는 바이지만, 감사를 순종으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은" 사이다. 전 직장과는 "다시는 그쪽으로 침도 뱉지 않는" 관계가 됐다.

함께 살고 있는 반려묘 '맷돌이'와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맷돌이는 그가 일하기 싫을 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모습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존재이자 동물권 이슈에도 민감하게 만든 고양이다. 그는 미래에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그 수익을 동물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관계의 끝이라고 보통 여겨지는 죽음에 대해선 정 작가에게 여러 의미가 있다. '경찰서에서 만난 죽음' 편에서의 죽음이란 두려움의 대상이고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영주에게' 편에서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는 끝이 아닌 조금 앞서간 관계로 정의된다. "죽음을 의심해요. 끝났지만 과연 끝일까.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친구가 앞서갔지만 덜 슬플 수 있고 죽음 후를 생각할 수 있게 돼요." 그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성실하게 살겠다 결심한다.

◇ADHD를 넘어 작가 정지음으로 거듭나기까지

정 작가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는 뗄래야 뗼 수 없다. ADHD는 그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작가의 길을 걷게 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ADHD가 있어 남들보다 2배는 노력해야 그들과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데 글쓰기는 훨씬 빠르고 쉽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수식어를 넘어서 이제 작가라는 타이틀에 집중하려고 한다.

"ADHD에 대한 책을 쓰고 좋은 점도 있어요. 책을 쓰기 전에는 ADHD가 뭔지부터 설명해야 됐는데 제 자신에 대해 너무 설명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그래도 'ADHD' 작가라는 타이틀은 제가 여러 환자 중 한 명이지 전문가가 아닌데 이 질환에 대한 제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털어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글 한 편을 털어냈다거나 책 한 권을 털어냈다는 식이다. ADHD에 대한 책을 쓰는 것도 '털어내기'의 과정이었다. 

작가는 이제 관계에 대한 책을 털어내고 소설을 준비 중이다. 사회초년생이 중소기업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는 이야기를 6월 중 출간할 예정이다. SW

lm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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