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금의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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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금의 한국영화’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2.05.0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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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사진=뉴시스)
강수연.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지난 7일 배우 강수연(56)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일 그가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는 물론 팬들 역시 큰 충격을 받았고 그의 쾌유를 비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전해졌다. 지난 6일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도 류승완 감독, 배우 설경구 등이 수상 소감을 통해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끝내 강수연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배우 강수연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등 한국영화계가 어려울 때마다 영화인들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보다 전 세대들은 그를 '최초의 월드스타'로 칭하기도 한다.

1987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1989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철의 장막'을 깼던 그였기에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의 명성은 큰 힘이 되기도 했다.

강수연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한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한 별이 사라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과한 말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일이 종종 있어왔지만 한국 배우가 비로소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강수연이 시초였다. 아역 스타로, 하이틴 스타로 각광받던 그는 불과 21세의 나이에 영화 <씨받이>에서 출산 장면을 연기하고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는 삭발을 단행하는 등 연기의 폭을 넓혀왔다.

그리고 90년대 <경마장 가는 길>, <베를린 리포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그대 안의 블루>, <지독한 사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화제의 한국영화 속에는 계속 그가 있었다. 무대를 TV로 옮긴 드라마 <여인천하> 속 정난정의 카리스마는 드라마의 인기를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이후 그는 스크린이나 TV보다는 영화 행정가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앞장서서 축소 저지에 나섰고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벨> 논란으로 '외압 의혹'에 휩쓸리고 예산도 축소되는 등 위기를 맞자 기꺼이 집행위원장 직을 맡아 영화제 정상화에 앞장섰다.

이 영화제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마음은 그가 영화인들에게 종종 했다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말을 인상깊게 들은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 <베테랑>에서 이 말을 대사로 활용해 유행어로 만들었는데 그 말의 원조가 바로 강수연 집행위원장이었던 것이다.

최근 그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 출연해 연기자 복귀를 알렸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할머니가 되어도 배우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시동을 걸던 시점에 갑작스럽게 병마가 찾아왔고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팬들의 입장에서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까웠던 이유다.

한국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 그리고 아카데미를 차지한 역사의 시초는 바로 강수연의 세계영화제 여우주연상이었고 그 역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지금의 성과들로 이어졌다. 존재 자체가 8,90년대 영화의 역사였던 강수연의 부재, 영화계는 당분간 그의 부재로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팬들 역시 자신과 함께 한 세대를 같이 했던 이의 부재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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