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지간 북한-미국도 이런일 있었네
상태바
원수지간 북한-미국도 이런일 있었네
  • 황영화 기자
  • 승인 2022.11.02 11:57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년전 해적에 피납된 대홍단호에서 총격전
구조 요청에 미 헬기 출격하자 해적들 항복
중상입은 북 선원 3명 미 국축함에서 치료
10일 뒤 북 중앙통신 이례적으로 감사 표명
지난 2012년 대만의 어선을 납치해 석방금을 받아낸 소말리아 해적 한 명이 소말리아 호비요 부근에서 배 옆에 서 있다. 호비요=AP
지난 2012년 대만의 어선을 납치해 석방금을 받아낸 소말리아 해적 한 명이 소말리아 호비요 부근에서 배 옆에 서 있다. 호비요=AP

[시사주간=황영화 기자] 한국 전쟁부터 70년 이상 적대관계를 이어온 북한과 미국이지만 15년 전 양국이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을 물리친 적이 있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NK NEWS)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7년 10월 29일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북한 화물선 대홍단호를 공격해 1만5000달러의 몸값을 내도록 요구했다. 그러자 대홍단호가 지원 요청 무선을 발했고 당시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 대해적 작전을 펴던 미 구축함 제임스 E. 윌리엄스호가 이 요청을 수신했다.

미 구축함은 즉시 SH-60B 헬리콥터를 출격해 상황을 파악했고 무선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미 구축함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이민 2세대 병사 로이 박이 대홍단호와 미 구축함 사이의 통신을 중개했다.

해적들이 무기를 바다에 버리자 로이 박이 의료진과 함께 배에 올랐으며 중상을 입은 북한 선원 3명을 제임스 E. 윌리엄스호로 이송해 치료했다. 앞서 북한 선원들과 소말리아 해적들과의 전투에서 소말리아 해적 1명이 사망했다.

로이 박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가슴에 김일성 및 김정일 배지를 달고 벽에 두 사람 초상화가 걸려 있었지만 북한 선원들도 자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됐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한국의 친척들을 연상했다는 것이다. 로이 박은 북한 선원들이 미 해군과 의료진들에게 극진한 감사를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미 구축함에서 치료를 받은 선원들은 대홍단호가 다시 항해를 시작하기 직전 대홍단호로 돌아갔다. 대홍단호는 예멘에서 며칠 정박했으며 예멘 병원에 입원했던 북한 선원 3명이 당시 상황을 언론에 증언했다.

이들에 따르면 대홍단호가 모가디슈항을 막 벗어나 해적이 출몰하는 해역에 진입하기 직전 소말리아 보안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승선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보안 요원이 실은 해적이었다.

약 16km 가량 항해를 했을 때 해적들이 M16 소총으로 위협하며 모가디슈에서 12시간 거리인 해적 근거지 하라르데레 해안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이 해적들은 6개월 전에도 2척을 납치해 한국 선원 4명을 포함한 24명의 선원을 억류한 당사자들이었다.

그러나 해적 본거지에 도착하기 전 대홍단호 선원 2명이 몰래 엔진을 꺼 배가 멈췄다. 해적 2명이 조사하자 엔진이 고장났다고 답했다. 해적들이 경계가 느슨해지자 북한 선원들이 이들을 제압해 무기를 빼앗았다. 앞서 북한 선원들이 배에 감춰둔 총기를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북한 선원들은 상황 설명을 하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다.

예멘 병원에 입원한 북한 선원들은 해적들과 3시간반 넘게 총격전을 벌이는 도중에 미 구축함이 나타났다면서 북한 선원들이 대부분 직접 상황을 장악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선원들이 10년 이상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배를 해적에게서 탈환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 국영 매체가 11월 8일 이례적으로 미국이 북한 선원들을 도운 것에 감사를 표시해 선원들의 증언보다 미국의 역할이 더 컸음을 인정했다.

선원들은 "미군이 상황이 종료된 뒤 나타났다"고 밝혔으나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미군 헬리콥터가 나타나 무선 경고하자 해적들이 총기를 버리고 항복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이어 사건이 "북미간 대테러 투쟁 협력 사례"라고 묘사하고 앞으로도 테러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의 상황 설명은 자신들이 책임있는 국가임을 강조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도록 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훼방하기 위해 대한항공기를 폭파한 2개월 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당시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비교적 순항하고 있어서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검토하고 있었으며 대홍단호 사건이 있은 지 거의 1년 뒤인 2008년 10월 미국은 북한이 핵프로그램 해체에 동의하자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미국은 2017년 북한이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한 뒤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대홍단 사건 당시 케냐의 선원지원단체가 북한 사람들을 체포해 몸바사항으로 이송해달라고 요청했었다. 북한 선박이 "의심스러운 행위"에 연루됐다는 이유였다.

선원지원단체의 주장이 옳았는지는 분명치 않았으며 미국은 비핵화협상을 위해 북한 선원들을 케냐에 보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홍단호 사건이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지도 한반도 비핵화에 기여하진 못했다. 다만 대홍단호 사건은 상황에 따라선 가장 치열한 적들과도 언제든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SW

hy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