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慘事)와 트라우마(Tr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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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慘事)와 트라우마(Trauma)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2.11.0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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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희생자를 추모하며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핼러윈데이(Halloweenday, 10월 31일)를 앞두고 주말인 29일(토요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13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 가운데, 해밀튼 호텔 옆 폭 3.2m 골목길에서 수천명이 연쇄적으로 엉켜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인명피해는 사망자 156명, 부상자 151명으로 총 307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26명이다. 하늘나라로 떠난 젊은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이날부터 11월 5일까지 일주일간을 ‘국가 애도(哀悼) 기간(period of national mourning)’으로 지정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 정말 참담하다”면서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밝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합동 분향소(焚香所)가 31일 전국 곳곳에 마련되면서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아 추도(追悼)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꽃을 놓아 만든 분향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같은 또래들이 다수 숨진 20대 청년들이 전국에서 분향소를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핼러윈(Halloween)은 고대 켈트족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비롯되었다. 켈트족(the Celts)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祭儀)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惡靈)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으며, 핼러윈 분장 문화의 원형이 됐다.

오늘날 핼러윈의 대표적인 행사로 아이들이 마녀나 요정, 유령, 인기 만화의 주인공 등으로 분장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얻는 놀이인 Trick or treat(맛있는 걸 안주면 장난칠 거야)를 꼽는다. 1952년 월트 디즈니는 오지와 헤리엇을 주인공으로 삼아 ‘트릭 오어 트릿’을 에피소드로 한 TV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유니세프(UNICEF)가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만든 캠페인 영상에도 ‘트릭 오어 트릿’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새 핼러윈 행사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놀이공원·쇼핑몰은 물론, 영어 유치원·어학원 등에서도 파티를 연다. 이에 핼러윈이 ‘제2의 크리스마스’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이태원에서 외국 같은 핼러윈을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이태원은 ‘핼러윈을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MZ세대엔 크리스마스보다 큰 축제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핼러윈 참사 직후 해밀턴 호텔 앞 도로에 수십 명이 쓰러진 채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 CPR)을 받았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사망 대부분은 외부 압력에 의한 심장박동 정지로 질식사(窒息死)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폐소생술(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이란 심폐의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었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최석재 홍보이사(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쓰러진 뒤 바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호흡이 돌아온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다면 저체온 치료를 통해 뇌 손상이 진행되는 걸 막아 환자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수십 분 이상 끼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잠깐의 심정지가 왔던 환자들은 적었을 거고 회복 가능성이 없던 환자들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정지 환자가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는 치료 골든타임은 4분에 불과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의료진, 구급대원은 물론 일반인들도 응급 환자들 심폐소생술에 대거 동참하면서 인명 피해를 줄이는데 한몫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언제라도 응급 처치를 할 수 있게 CPR을 배워야 한다”는 지원자가 많다. CPR 교육은 보건소, 소방서, 국민안전체험관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등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교육기관과 대한심폐소생협회에서도 가능하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멈췄을 때 인공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고 호흡을 돕는 응급치료법이다. 응급상황에서 신속한 심폐소생술이 중요한 것은 심폐소생술을 효과적으로 하면 하지 않을 때보다 환자의 생존율이 최고 3.3배, 뇌 기능 회복률은 최고 6.2배 올라가기 때문이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건 자동심장충격기(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AED)의 역할이고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다시 뛸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라고 보면 된다.

일단 누군가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번 시작했다면 구급대원에게 인계가 완료될 때까지 절대 멈추면 안 된다. 심폐소생술이 힘들면 다른 사람과 교대하면서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의식이 돌아오고 자가 호흡과 박동을 하면 일단은 살려냈다고 봐도 된다.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은 보통 5년마다 업데이트되고, 미국의 AHA(American Heart Association)과 유럽의 ERA(European Resouscitation Council)에서 발표된다.

이태원의 압사(壓死) 사태는 주말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면서 오후 9-10시에는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붐볐다. 156명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골목은 길이 40m, 폭 3.2m 오르막길이었다. 29일 오후 10시 15분쯤 이 골목길 오르막 위쪽 부근에서 사람들이 우수수 쓰러지며 겹겹이 뒤엉키는 일이 생긴 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 아래 깔리거나, 사람 사이에 끼어 압력이 높아지면서 압사하는 사람이 잇따라 나온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여성들이 깔린 뒤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 피해가 컸다. 만약 경찰이 사고 현장 좁은 골목길을 ‘일방통행’으로 정하여 통제 했다면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앞으로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영국 그리니치대학교(University of Greenwich) 공학 및 과학과 에드윈 갈레아 교수(화재안전공학그룹 리더)는 ‘군중압착(crowd crush) 연구자’로서 이태원 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규제 이후 열린 핼러윈 축제였기에 수많은 청년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이에 당국은 사전에 준비를 제대로 해야 했으며, 신고전화가 오면 군중 관리 훈련을 받은 경찰을 위험한 지역에 빨리 배치였어야 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다 해도 많은 인파가 예상되므로 당국이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군중압착은 군중 밀집도(密集度)를 관리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좁은 공간에선 1m2(제곱미터)당 4명이 모이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으며 군중밀도가 단위면적당 6명을 넘어서면 점진적 군중붕괴(progressive crowd collapse)로 이어질 수 있다. 즉, 한 사람이 넘어졌을 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주변이 모두 함께 미끄러지는 현상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면 군중 속 압력이 전체적으로 증가한다.

만약 군중이 밀집돼 유체(流體)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되면 이미 위험에 처한 것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아무리 개인이 침착하게 행동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사고 당시 이태원 골목길에는 군중밀집도가 6명을 초과하여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참사를 예방하려면 잘 짜인 행사 계획과 군중의 흐름 관리가 중요하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군중 관리 방법을 잘 알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경찰 인력이 필요하다.

20대 남성 A씨는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 해밀톤호텔 옆 계단으로 진입했다. A씨는 이내 위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아래서 밀고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갇혀버렸다. 그는 오도 가도 못하다 결국 무게를 버티지 못해 왼쪽으로 넘어지며 4명의 다른 남자들에게 깔렸다. A씨는 15분가량 깔려 꼼짝도 못하고 “이대로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빠져나가는 것 포기했을 때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성이 팔과 겨드랑이를 잡더니 인파 속에서 자신을 구조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따르면, 주한 미군 3명이 군중 속에서 약 30명을 구조했다고 한다.

외신은 “한국의 초연결성이 핼러윈 참사 트라우마(trauma)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한국인들은 스마트폰과 초연결성을 통해 온라인에서 끔찍한 장면을 소비하고 전파했으며, 이것이 이번 참사에서 더 많은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이태원 현장 상황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고작 클릭 몇 번에 사회 전체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졌다. 시민들은 참사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가슴 아파했고, 상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서 본 사진이나 영상이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백중우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는 “외상 후 스트레스는 사안에 직접 관여한 이들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 이뤄지더라도 엄청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Korean Society for Traumatic Stress Studies)가 제공한 ‘재난 충격의 피라미드’에 따르면, ‘1차 경험자’는 직접 충격과 손상을 받은 사람이며, ‘2차 경험자’는 1차 경험자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이다. ‘3차 경험자’는 구조인력, 의료인들이며, ‘4차 경험자’는 재난지역 거주자, 그리고 ‘5차 경험자’는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란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정신 신체 증상들로 이루어진 증후군을 말한다. 외상(trauma)이란 내부 또는 외부에서 오는 너무 강력한 자극으로 인해 정신 기구가 갑자기 붕괴되거나 고장을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외상이라는 개념은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초기 신경증 이론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주된 증상은 충격적인 사건의 재경험과 이와 관련된 상황 및 자극에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찰과 면담, 병력 청취, 질의응답에 의해 진단되며,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의 진단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치료는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은 정서적인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이완요법 등의 적응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치료방법이다. 약물 치료로는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약물로써, 이 약물은 우울증 및 다른 불안장애의 증상과 유사한 증상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유의 증상도 호전시킨다. 정신 치료 요법으로는 정신역동적 정신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밖에 행동치료, 인지치료, 최면요법 등이 심리요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심리 안정화 기법인 호흡으로 불안 심리 관리,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기 등을 권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호흡이 가빠지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심호흡과 복식호흡을 하면, 안정을 유도하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교감신경 항진은 줄어든다.

심한 트라우마에 노출된 사람에게 해리(解離)증상(dissociation symptom)이 올 수 있다. 즉 트라우마 상황에서 몰두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과거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나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안정화 기법인 ‘착지법’과 ‘나비 포옹법’ 등이 필요하다.

‘착지법’은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려놓으며, 발뒤꿈치에 지그시 힘을 주어 단단한 바닥을 느끼는 방법이다. ‘나비 포옹법’은 두 팔을 가슴 위에 교차시킨 상태에서 양측 팔뚝에 양손을 두고 나비가 날갯짓하듯이 좌우를 번갈아 살짝살짝 10-15번 두드리는 방법이다. 갑자기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대거나, 괴로운 장면이 떠오를 때, 그것이 빨리 지나가게끔 자신의 몸을 좌우로 두드려 주고 스스로 안심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태원 참사 심리지원은 국립건강정신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센터장 심민영)가 총괄하고 있다. 심민영 센터장은 “트라우마에 의해 독특한 스트레스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돼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PTSD 진단을 받아야 한다”며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유사한 반응을 보여 3일까지는 질환이 아니라 급성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3일 이후에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

심 센터장은 “사고를 당한 건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극복하는 힘이 회복탄력성”이라며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 고립되지 않고 누군가와 연결됐다고 느끼는 연결감이 가장 강력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 연결감이 없어서 어떤 비난이나 루머 같은 부정적인 반응에 노출되었을 때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2차 가해가 더 큰 상처를 주고, 당사자들의 회복에 어려움을 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젊은 연령층과 학생 등 사고 당사자 외에도 주변 친구들, 동년배들이 굉장히 힘들어해 여가부와 교육부에서도 사이버상담세터 등을 가동하고 있으므로 전문가와 적극 상담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 따른 국민들의 심리적 문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과 지원이 촉구된다. 미국은 지난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참사 후 처음에는 ‘뉴욕 테러’ 등으로 표현했지만 이후 지명을 뺀 ‘9·11 테러’로 부르고 있다.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사고 현장의 지명 ‘이태원’ 대신 ‘10·29’ 날짜로 표현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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