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밀한 위험···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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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밀한 위험···불편한 진실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3.01.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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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살해 피해 최소 83명, 살인미수 177명
가정 내 폭력 위험성 대한 경각심 여전히 낮아
"여전히 사적 영억으로 인식…공권력 거부감도"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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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이민정 기자] #1. 지난 2일 경기 안성 진사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50대 남성 A씨가 이혼한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A씨가 수 차례 전화로 욕설과 위협을 한다며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흉기를 미리 준비해 전 부인을 찾아갔고, 아내를 살해한 후 A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2. 지난달 29일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 B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당시 B씨는 아내에게 이혼 소송 취하를 요구했고, 아내가 소송 취하를 거부하자 집에 있던 장검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자리에는 장인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오랜 기간을 함께했던 배우자나 연인을 살해하는 범행이 한 해에만 수백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5일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 한 해 동안 언론 보도된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살해된 여성은 최소 83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77명이었다.

이 중 36명(43.3%)은 남편에게 살해됐으며 57명(32.2%)은 남편의 살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남편에게 살해된 여성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21 여성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성인 여성 7000명 중 평생 동안 여성 폭력 피해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34.9%(2446명)였으며, 이 가운데 46%(1124명)는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한테서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배우자 살인'이 끊이지 않는 배경으로 가정 내 폭력을 다른 폭력보다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위원은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는 엄격하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범죄에는 그렇지 않다"며 "실제로 사법기관은 '불특정다수'를 기준으로 재범 위험성을 판단한다. 그런데 특정 자기 주변인들에게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불특정다수가 아니라며 재범 위험성을 낮게 잡는 법적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도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개선된 건 맞지만, 가정은 여전히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된다"며 "가정 내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거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경찰이 신고받고 출동해도 상황이 종료돼 있으면 증거를 잡기가 힘들어서 문제 삼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강화가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장다혜 연구위원은 "여성 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많이 활용하는데 신변 보호의 범위는 늘어났지만, 경찰 인력은 늘어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경찰의 신변 보호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912건이던 신변 보호 건수는 2017년 6889건,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2020년 1만4773건, 2021년 2만4810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전국에 있는 258개의 경찰서로 신변 보호 건수를 배분하더라도 경찰서 1곳당 맡아야 하는 신변 보호 대상자는 90여명이 넘는다. SW

lm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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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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