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인정 안되지만…法 "동성결합·사실혼은 본질적으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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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인정 안되지만…法 "동성결합·사실혼은 본질적으로 같아"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3.02.2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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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제기
"혼인 실체 충족" 주장했으나 1심 패소
2심, 1심 판결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
"사실혼은 아니지만…본질 다르지 않아"
"법원, 인권 최후보루" 차별반대 메시지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사진=뉴시스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민정 기자] 동성 부부(이하 동성결합)라는 이유로 가입자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이성(異性)의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므로 건보공단의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봤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단호한 메시지도 덧붙였다.

◇ "동성 사실혼 배우자도 피부양자" 주장했지만…건보공단 불인정, 1심에선 원고 패소

21일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판사 이승한·심준보·김종호)는 소성욱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건강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소씨와 김용민씨는 아직 법적인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건보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에 소씨는 자신의 사실혼 배우자로서 김씨가 피부양자에 해당한다며 피부양자 자격을 신청해 2020년 2월 그 자격을 취득했다. 통상 남녀간의 사실혼 관계에서는 피부양자 등록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이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후 이들의 가입기록을 삭제했다. 두 사람이 적법한 통지가 없었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피부양자 인정요건 미충족'으로 접수된 서류를 반송한다는 공문을 보냈고,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자격 인정을 무효화했다.

이에 소씨와 김씨는 자신들이 주관적인 혼인 의사와 객관적인 혼인 실체를 모두 충족하고 있으므로, 동성결합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월 1심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우선 남녀 간 결합을 '혼인'의 근본 요소로 간주하는 민법과 과거 대법원·헌법재판소 판례를 따랐다. 그러면서 혼인제도는 사회문화적 합의의 결과물이므로 입법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 항소심 "이성·동성결합 사이 권리·의무 다르지 않아" 사실혼 

항소심 재판부도 '혼인'을 이성 간 결합으로 간주하는 과거 판례를 따른 것은 1심과 같았다.

재판부는 "현행법의 여러 해석례에 비춰 보면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현행법령의 해석론으로는 두 사람 사이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관계에 있는 이들과 '동성결합' 관계에 있는 이들 간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주목했다.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제도의 연원 등에 비추면 가족제도와 부양의무의 맥락을 따져야 하는데, 동성결합의 경우 동거·부양·정조 등 가족법상 권리·의무가 없다"며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혼 배우자 간에 갖는 권리·의무는 법률혼 규정들을 유추·적용한 결과일 뿐이므로, 동성결합 상대방 사이에 발생하는 권리·의무가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은 모두 법률적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고 판시했다.

또 건보공단이 민법상 가족이 아니거나 부양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법률적 의미의 가족과 부양의무는 피부양자 제도의 출발점일지언정 그 한계점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재판부는 "이 사건 비교집단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은, 그들이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의 상대방인 직장가입자가 그들과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 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더 이상 설 자리 없다"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를 대상으로 한 건보공단의 처분을 두고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해 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했다.

또 이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 즉 자의금지원칙을 위반한 처분이라고 봤다. 변론 과정에서 '사실혼과 동성결합을 달리 취급해야 할 합리적 이유를 밝히라'는 재판부 명령에 건보공단이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못한 점도 언급했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는 단호한 메시지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성소수자 차별이 존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한 차별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평등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며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어떤 면에서 소수자일 수 있고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며 "소수자의 권리 인식과 보호를 위한 노력은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라고 강조했다. SW

lm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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