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OO존 천국, 혐오를 당당하게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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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OO존 천국, 혐오를 당당하게 하는 나라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3.05.1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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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전해진 '노시니어존' 등장 소식에 갑론을박
특정 연령·대상 배제보다 행위에 대한 기준 마련 필요
최근 '노시니어존' 등장 소식이 전해져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노시니어존' 등장 소식이 전해져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60세 이상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 카페 등장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제주의 '노시니어존' 카페 사진이 확산됐다. 해당 사진에는 카페 출입문 유리에 '노시니어존'과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이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있다.

사진을 올린 작성자는 "한적한 주택가에 딱히 앉을 곳도 마땅찮은 한 칸짜리 커피숍"이라면서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지나가다 보실까 봐 무섭다"고 씁쓸해했다.

해당 게시물을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는 논란이 가열됐다.

"특정 연령대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 "너무 각박하다", "노키즈존에 이어 노시니어족이냐", "60세면 어르신이라고 하기에 젊다" 등 비난의 목소리와 함께 "진상이 얼마나 많았으면",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이처럼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카페의 단골손님이라고 주장한 네티즌이 '해명' 취지로 댓글을 달았다.

이 네티즌은 "그냥 제가 써 드리고 싶어서 댓글 달아요. 동네에 테이블 두 개 있는 작은 카페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여성 사장님한테 '마담 예뻐서 온다', '커피 맛이 그래서 좋다' 등 성희롱을 많이 하셨고, 그런 부분들을 사장님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노시니어존'이라고 써 붙이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두 명을 자녀로 두신 어머니이지만, 그래도 여성분이신데 그런 말씀 듣고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까. 단편적인 기사만 보고 다들 사장님 잘못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아 댓글 남긴다"고 덧붙였다.

단골손님의 해명(?)에 네티즌들은 사장의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노시니어존' 지정은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진상'이 나이 든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사람들만 못 오게끔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가정의 달, 그것도 어버이날 불거진 '노시니어존' 논란은 우리나라에 만연해진 '노OO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몇 년 전부터 카페와 식당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출입을 막는 '노키즈존'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는 중고등학생들을 거부하는 '노스쿨존', 장시간 앉아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을 받지 않는 '노스터디존', 노워크존'이 등장했다.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제한'이라는 입장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특정 대상을 배제하는 문화가 당연시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처럼 혐오를 당당하게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는 한 네티즌의 댓글이 뇌리를 스친다.

전문가들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OO존'을 운영한다고 해서 업주가 법적 처벌을 받지 않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에 대해 차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인권위는 13세 이하 아동의 이용을 제한한 제주의 한 식당에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한 이용 제한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제주도는 도 차원에서 '노키즈존 금지'를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 역시 '배타성'을 목적으로 하는 '노OO존'은 사회적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정 대상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공동체적 가치를 저버리는 과잉된 조치로, 그 대상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는 행동은 업체 사장뿐 아니라 손님에게도 필요하다. 갈등이 일어났다고 해서 '노OO존'처럼 특정 대상을 배제할 게 아니라 행위에 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다가오는 6월 부모님의 환갑을 맞는 기자에게는 이번 '노시니어존' 등장 소식이 더욱 씁쓸하다. "우린 누구나 아이였고, 노인이 될 텐데…"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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