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블랙박스? 침묵의 기록자? 그이름은 '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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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블랙박스? 침묵의 기록자? 그이름은 '속기사'.
  • 시사주간
  • 승인 2013.10.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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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주간=정치팀]

국정감사가 한창인 국회에는 국회의원만큼이나 바쁜 사람들이 있다. 상임위원회 회의장 한가운데 아무 말 없이 앉아 쉴새없이 자판을 두들기는 속기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숨막히는 국감장, 그리고 침묵의 기록자

상임위원장이 국감 개시를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의원들이 발언을 시작하면 속기사들은 이를 토씨 하나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의원들의 일반적인 질의나 의사진행발언은 물론 예기치 않았던 돌출발언까지도 속기사들의 손을 거쳐 속기록에 담기게 된다.

의원들의 추가질의가 이어져 늦은밤까지 감사가 지속돼도 속기사들은 교대를 해가며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감사가 종료되지 않는 한 속기사들도 퇴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상임위별로 5~6명의 속기사가 배치돼있고 이들이 서로 교대해가면서 타자를 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감장에는 1~2명의 속기사가 배치된다. 2명이 속기사석에 앉아있는 경우는 새내기 속기사와 선임 속기사가 함께 앉아있는 경우다. 신입 속기사의 경우 국감장에서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돌발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이 아무래도 떨어지기 때문에 선임의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국감장에 1명만 앉아 속기를 하고 있다면 그 속기사를 베테랑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져 장시간 자판을 두들기다보면 팔과 손목이 아플 법도 하지만 속기사용 자판은 일반 컴퓨터 자판과 달라 부담을 줄여준다. 특정 글쇠를 조합하면 '습니다' '입니다' 등 상용구를 쉽게 입력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일반 키보드로 그렇게 장기간 친다면 당연히 손목이 아프지 않겠냐"며 속기사용 자판의 강점을 소개했다.

사실 손목통증보다 속기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질의에 나선 의원들의 발언 스타일이다. 특히 경상도 출신 의원들이 질의할 경우 특유의 억양 탓에 타 지역 출신 속기사들이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언의 속도도 문제다. 실제로 속기사들은 단순히 말이 빠른 의원들을 특별히 꺼리지 않는다. 대신 속기사들 사이에서는 발언과 발언 사이의 간격이 짧은 의원들이 기피대상이다.

한 관계자는 "속기를 할 때 리듬을 타야 하는데 쉬지 않고 얘기하는 의원들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고 설명했다. 특히 야당의원들이 제한된 질의시간에 쫓기며 쉴 틈 없이 발언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일선 속기사들의 전언이다.

국감장에서 의원과 증인 사이에 난이도가 높은 질의와 답변이 오가는 경우 역시 속기사들을 긴장케 하는 대목이다.

기획재정위원회나 정무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더 많이 요구하는 상임위에 배치되면 해당 상임위의 현안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의사진행 관련 용어나 법체계, 입법과정 등에 밝아야 정확하고 빠르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속기사 채용과정에서는 단순히 타자실력 뿐만 아니라 관련지식까지 검증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국회에 고용된 속기사는 115명(정원 120명)인데 이들은 모두 한글 속기 1~3급 자격증 시험 뿐만 아니라 영어, 헌법, 행정법총론, 행정학개론 등 과목 관련 문항이 출제된 필기시험(5지선다 20문항, 100분)도 통과해야 한다.

속기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누출하지 말아야 하는 상임위도 있다. 원래 속기사는 채용과정에서 1차적으로 신상을 조회하지만 국가정보원을 소관기관으로 둔 정보위원회의 경우는 한 번 더 신상을 조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타 상임위 속기사는 타자를 친 후 해당 상임위 사무실로 이동한 뒤 정리작업을 하는 반면 정보위 소속 속기사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정보위 내부 컴퓨터로만 정리작업을 해야 한다. 정보위 소속 속기사는 3~4명 정도로 한정되고 이들은 정보 누출 시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초(史草)의 성격 띠는 속기록, 조작 가능성은?

이처럼 속기사들에게 갖가지 조건을 요구하고 제한사항을 두고 있는 것은 이들의 업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감 중 증인이나 의원으로부터 중대사안에 관한 핵심적인 발언,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관한 발언, 위증 등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 발언 등이 나오면 의원들은 일제히 "속기를 확인해보자"며 속기사들을 찾는다.

실언을 한 의원들은 속기록에서 해당 발언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여야합의로 국회사무처에 속기록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지난 17일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이 국감 중 외국인 관광객의 인기를 끄는 막걸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태원의 모 주점의 실명과 특정 막걸리 상표를 여과없이 언급하자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관광공사가 실명을 거론하면 안 된다"며 속기록에서 실명을 삭제할 것을 여야 간사에게 요구한 바 있다.

다만 이 같은 사례는 속기록 조작 가능성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살 수도 있다. 여야의원들이 담합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속기록에서 삭제할 수도 있다는 것.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회법 117조는 '발언한 의원은 회의록이 배부된 날의 다음날 오후 5시까지 그 자구의 정정을 의장에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발언의 취지를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속기방법에 의해 작성한 회의록의 내용은 삭제할 수 없으며, 발언을 통해 자구정정 또는 취소의 발언을 한 경우에는 그 발언을 회의록에 기재한다'는 규정도 있다.

아울러 해당 법조문에는 '의원이 회의록에 기재한 사항과 회의록의 정정에 관해 이의를 신청한 때에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본회의의 의결로 이를 결정한다'는 규정도 있어 임의로 속기록 내용을 수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 자구를 정정하는 경우에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국회규정인 국회회의록 발간·보존 등에 관한 규정은 자구의 정정이 가능한 경우를 ▲법조문·숫자 등을 착오로 잘못 발언한 경우 ▲특정 어휘를 유사 어휘로 변경하는 경우 ▲간단한 앞뒤 문구를 변경하는 경우 ▲기록의 착오가 있는 경우로 한정, '적어도 법적으로는' 각종 외압으로부터 속기사들을 보호하고 있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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