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별신굿’ 전수자의 허망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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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별신굿’ 전수자의 허망한 죽음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2.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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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한예종 겸임교수 및 시간강사 재직, 8월 ‘해고 통보’
한예종 “공개채용 응하지 않았다” 교수노조 “해고 이유 분명 있을 것”
‘강사법 때문’ 지적에는 모두 ‘동의할 수 없다’
지난 13일 사망한 김정희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지난 13일 사망한 김정희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13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가호 동해안별신굿 악사인 전수교육조교 김정희(58)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설립 때부터 겸임교수 등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올 8월 한예종 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문제를 거론했다. 강사법이 대학 강사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시행했지만 오히려 강사들의 대량 해고를 야기하고 이로 인해 강사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예종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용조건을 강화해 해고를 쉽게 했고 이로 인해 김씨 같은 희생자가 양산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며 한 언론에서는 '김씨가 지난 8월 강사법이 시행되면서 대학 측이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강사를 다시 뽑아야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강사법 도입 전까지는 학위가 없어도 예술 활동 경력을 참작해 강사 자격이 부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을 전했다.

강사법은 강사를 대학 교원으로 인정해 3년간 재임용 절차와 방학 중 임금, 퇴직금 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취지가 있지만 대학들이 고용 부담을 느끼며 강사 수를 줄이는 이유로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1월 발표한 '10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교육서비스업 종사자는 158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 추세가 강사법으로 인한 학교들의 인원 감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고용노동부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여파가 있기는 하지만 교육서비스업에는 대학강사뿐 아니라 초등교육 등도 포함되기에 꼭 대학 강사만이 줄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교수들을 중심으로 '김씨의 죽음은 강사법이 아니라 대학이 만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올 8월 대학 측이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강사를 다시 뽑겠다'며 김씨를 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고인이 한예종에서 겸임교수 또는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강사 신분으로 강의를 하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겸임교수는 '조교수 이상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교수 및 연구 내용이 원소속기관의 직무 내용과 유사하고 순수 학술이론 과목이 아닌 실무, 실험, 실기 등 산업체 등의 현장 실무경험을 필요로 하는 교과를 교수하게 하기 위해 임용된다.

또 초빙교수는 '조교수 이상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 또는 이에 준하는 해당 분야 경력을 보유한 자'로서 특수한 교과를 교수하게 하기 위해 임용된다. 즉 강사법에는 강사의 학위 등 자격을 담고 있지 않으며 각 대학이 강사를 공개채용할 때 공고를 통해 학위, 교육경력 등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

노조는 이를 바탕으로 "한예종도 고인을 계속 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예종은 고인을 해고하고 싶어했고 고인은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한예종은 해고의 진정한 사유를 숨긴 채 마치 강사법 때문에 해고한 것처럼 말하고 있고 언론도 김씨의 죽음을 강사법의 책임인 양 무책임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예종은 "강사법 이후 해고 통보, 석사 학위 없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 등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김씨는 겸임교수 신분이 아닌 시간강사 신분이었고 강사법 근거에 따라 강사 공모에 지원을 해야하는데 지원을 하지 않았다. 학교의 강사채용 공고 어느 곳에도 학위 자격기준으로 석사 학위 이상의 자격을 명시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한예종에 따르면 올 6월 최초 강사 공개채용 때는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위를 요구했지만, 8월 재공고를 통한 추가 채용 때는 학력 제한을 두지 않아 학위를 갖추지 못한 해당분야의 권위자도 응시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예종 관계자는 "김씨가 올해 1,2차 공개채용에 응하지 않았다. 강사법 취지에 따라 위촉에서 공개채용으로 전환을 했는데 강의를 20년을 했다 해도 모든 분들이 공채에 지원해 평가 결과에 따라 가야한다. 특혜를 주면 안 되는 상황이다. 학교가 해고를 한 것이 아니라 김씨가 채용에 응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공채에 임한 다른 분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강사 공채를 진행하면서 지난해 인원과 현재 공채로 채운 인원을 보면 기존보다 더 강사들이 늘었다. 재정을 아끼겠다고 강사를 줄이는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예술계 쪽에서는 김씨가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를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결국 적은 급료와 앞길 보장이 되지 않는 '시간강사'라는 신분이 김씨에게 좌절감을 줬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채효정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98년부터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것은 그만큼 대학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을 대학은 20년 내내 '강사'로 써먹었다. 보험도 없고, 신분 보장도 없고, 다음 학기에 잘릴 지 언제 잘릴 지 모른 상태로 20년을 일해온 것이다.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강사가 싸기 때문이다. 대학들에겐 학자도, 예술가도, 모두 '얼마짜리'로 계산되는 '비용일 뿐"이라고 밝혔다.

학교 측과 교수들 모두 '강사법이 교수를 해고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공채 지원을 하지 않아서 일어난 결과'라는 학교 측의 입장에 대해 교수들과 예술인들은 '20년간 강사로 '싸게 부려먹은‘ 김씨를 해고하려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4대에 걸쳐 동해안별신굿을 전수받아온 김씨의 허망한 죽음은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예술인들의 현실과 이를 이용하려는 대학의 모습이 한데 섞이며 씁쓸함을 주고 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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