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새기니 나무가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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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새기니 나무가 그림이 되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5.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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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 나무, 그림이 되다' 전
김준권, 靑竹-1302, 167×90cm×3ea, 채묵목판, 2013
김준권, 靑竹-1302, 167×90cm×3ea, 채묵목판, 2013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4일부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전시의 제목은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  나무, 그림이 되다>다. 대한민국 대표 목판화 작가 18인의 작품을 선보이고 대형 목판화 작품들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띄지만 전시를 보다보면 블록버스터라는 거창한 문구보다는 '나무, 그림이 되다'라는 부제가 더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이 전시는 100여점의 대형 목판화를 '국토, 사람, 생명' 3부로 나누어 전시한다. 사실 일반 관객들의 눈에는 판화와 회화의 차이가 크게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판화를 원판이 아닌, 한지에 찍힌 결과물로만 접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김준권 판화작가는 이 말로 정보를 줬다. "판으로 나올 때의 그 느낌은 다릅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작품을 봤을 때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류연복, 그리움-별, 한지에 목판화, 91x182cm, 2021
류연복, 그리움-별, 한지에 목판화, 91x182cm, 2021

판의 질감은 당연히 붓의 질감과 달랐다. 이 질감을 살리기 위해 작가들은 쉬운 붓질이 아닌 일일이 새기는 칼질을 택했고 그 고생만큼 회화와 다른 질감을 선보일 수 있었다. 바다와 파도, 산의 투박함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전한다. 강 앞에 혼자 앉아 있는 여인, 첩첩산중에 홀로 앉아있는 승려의 뒷모습을 새긴 류연복의 <그리움> 시리즈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다. 무심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여인의 처진 뒷모습이 '그리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생생하게 새겨낸 작품들은 마치 관람객들이 그 장소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가로 9.6의 길이로 해남에서 보길도까지의 여정을 담아낸 김억의 <남도풍색>과 <지리산 하동 평사리>는 실제 모습을 그대로 찍어낸 느낌을 그대로 살린다. 블록버스터라는 것이 단순히 큰 작품, 이름있는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허장성세가 아닌, 섬세함으로 표현한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김억, 남도풍색, 60×959cm, 한지에 목판화, 2016
김억, 남도풍색, 60×959cm, 한지에 목판화, 2016

하지만 이 전시의 핵심은 '사람'에서 나온다. 시인 김수영, 독립운동가 김원봉, 전태일 열사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평범한 우리들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들을 세밀하게 나무에 새긴 작가의 마음이다. 노인의 주름, 작가 자신의 표정 등을 새긴 목판에서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붓질이 아닌 칼질을 통해 오랜 기간을 들여 세기고 다듬은 작가의 마음이 작품에 표현되고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판화는 결과물만 보고 판단을 하면 안된다. 판화에서 느껴지는 질감,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판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오랜 기간을 새긴 목판에 있다. '마음에 새긴다'는 말이 있지만 작가들이 한 일은 '마음을 새기는' 일이었다. 그렇다., 그렇기에 나무는 그림이 될 수 있었다. 작가들의 마음을 새기는 작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목판에 새겨진, 한지에 찍힌 얼굴들을 보니 찡한 감정이 느껴졌다. 

홍선웅,제주 4.3 진혼가, 60×182cm, 목판화, 2018
홍선웅,제주 4.3 진혼가, 60×182cm, 목판화, 2018

그랬기에 작가들은 장준하 선생, 이회영 선생의 일대기를 새길 수 있었고 앞서 우리의 산천들도 새길 수 있었다. 제주 4.3항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위로, 탱크 앞에서 진군을 막기 위해 서로 손에 손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새길 수 있었다.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고 전시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 전시는 새김을 통해 마음을 전하려했던 판화가의 마음을 이해할 때 감흥이 오는 전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판화가 무엇인지, 판화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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