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의 '파격', 지금도 막고 있는 한국 미술계
상태바
김구림의 '파격', 지금도 막고 있는 한국 미술계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3.08.28 07:23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구림 작가. (사진=뉴시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구림 작가.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민정 기자] "이번 전시는 아방가르드한 작품은 하나도 없고 고리타분한 것들만 늘어놨다. 새롭고 파격적인 작품을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

지난 2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의 개인전에서 87세의 노작가 김구림은 미술관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대규모 전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는 것이 감격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전시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1970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을 염하듯이 흰 광목으로 묶었던 <현상에서 흔적으로>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작가와 미술관의 갈등이 벌어졌다. 이 작품은 미술관 건물 외관 전체를 30cm 폭의 흰 광목으로 한 바퀴 두르고 천의 두 끝자락을 현관 앞 구멍에 매장하고 큰 돌을 얹어 미술관 전체를 묶은 것이다. 

이 작품의 의도는 '과거의 고리타분한 미술관은 관 속에 버리자'는 의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을 재현하려했다. 하지만 미술관과 문체부의 반대로 전시가 재현되지 못한 것이다.

김 작가는 "당시에는 그 작품이 설치됐다가 철거됐지만 40년이 지난 오늘날에 설치 자체도 못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설치는 됐지만 26시간 만에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는 이유로 철거됐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광목으로 미술관을 묶는다고 해서 건물이 손상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곳이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 전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은 전시장인 서울관이 '등록문화재 375호'임을 내세우고 있다.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이다.

미술관은 "서울관이 등록문화재이기에 건물 외벽을 감싸거나 하는 경우 문화재청 등 관련 부서 심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작가가 전시 2개월 전에 작품 전시를 언급해 개막에 맞춰 협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230여점의 작품들이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이며 관련 퍼포먼스도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추구했던 작품의 전시가 무산됐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에 충격을 던졌던 작가는 해외에서의 유명세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계속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야했다. 그리고 40,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품은 설치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규정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파격'에 문을 닫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점이 씁쓸함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SW

lmj@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