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106년만 뮤지컬로 재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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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거, 106년만 뮤지컬로 재연됐다.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5.02.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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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 기자]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쏜 총탄이 106년이라는 시간을 꿰뚫었다.

동양평화 실현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했던 그 순간은 7일 밤 하얼빈 국제컨벤션센터 내 1600석 규모의 환구극장에서 감동적으로 재연됐다.

하얼빈 역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현된 한국 창작뮤지컬 '영웅'의 하얼빈 초청 공연 현장. 안중근 역의 강태을(35)이 저격 신을 연기한 뒤 "대한독립 만세"를 우렁차게 외치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일시에 터져나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월 하얼빈 역에 개관한 안중근 기념관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무대다. 작년 한해에만 12만명이 이곳을 찾았다. 그 전까지는 2006년 하얼빈 시내에 민간 차원에서 조선민족예술관이 건립돼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를 모아 전시해왔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6주년, 순국 105주년을 맞는 해다. 게다가 광복 70주년이기도 하다.

2011년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뉴욕 브로드웨이 링컨센터 무대에 올라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뜻 깊은 해에 뜻 깊은 곳에서 벌어진 이번 '영웅' 공연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감동을 전달하기 위한 완성도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간 중국에서 공연한 한국 창작 뮤지컬은 대부분 약식이었다. 무대 장치 등을 옮겨오기 힘들어 온전한 공연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웅'은 이런 관례를 깼다. 약 12m짜리 컨테이너 박스 5대에 공연장비를 가득 채워 옮겨와 서울 공연 무대를 오롯이 재현했다. 지난달 19일 인천항을 떠난 장비는 중국 다롄을 거쳐 이달 1일 하얼빈에 도착했다.

'영웅' 제작사인 에이콤인터내셔날의 황보성 경영부문 대표 프로듀서는 "컨테이너 박스 5대 분량의 공연'으로 헤드라인을 뽑아 보도한 현지 언론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영웅'의 안무감독 이란영(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은 "한국 창작 뮤지컬이 이처럼 중국에서 온전한 틀을 갖춰 공연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쌍화별곡'의 연출 등을 맡아 중국에서 여러번 공연을 지휘했다.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본래 연출을 맡은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는 2010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에 맞춰 중국 공연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하얼빈 시 당국이 일본과 관계 등을 고려해 공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후 수차례 가능성을 타진한 끝에 마침내 하얼빈 시의 초청을 받아냈다. 하얼빈 시가 배우와 스태프들의 체재비, 공연 홍보비를 부담했다. 그 외 소요되는 예산은 약 3억5000만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마사회가 이 중 약 2억5000만원을 부담키로 했다.

공연을 올리기 직전까지 어려움이 있었다. 환구극장 무대 상황이 열악했다. 회의장을 겸하는 공연장이라 무대 시스템이 복잡한 '영웅'을 공연하기에 만만찮아 보였다. 하지만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등이 공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무대를 꾸몄다. 어쩔 수 없이 현장 장비로 쓴 핀조명이 몇번 빗나갔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이토가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장면에선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기차 세트 앞에 투명 가림막을 내리고 그 위에 휘날리는 눈발과 자작나무가 뒤로 빠르게 사라지는 영상을 접목, 실제로 기차가 질주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이 조화를 이뤘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무대막이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국에서는 10초인데 환구극장에서는 25초 가량 걸리는 등 기존 공연 속도에 맞는 타이밍을 조정하는 게 어려웠다"면서 "이 극장 1번 공연이 한국에서 3번 공연하는 것에 맞먹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태프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1세기 전에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을 떠올렸다"고 덧붙였다.

음향도 생각보다 좋았다. 오케스트라를 대동하는 서울 공연과 달리 반주음악(MR)을 사용했음에도 소리가 풍성했다.

'영웅'의 이번 하얼빈 공연으로 한중 외교의 친밀도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가 나왔다. 하얼빈 시의 이번 공연 초청에 힘을 실은 조선족인 서학동 하얼빈 시 문화부국장은 "'영웅'으로 하얼빈 내 안중근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더 깊어진 듯하다"면서 "한국 내 하얼빈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얼빈은 약 1000만명이 사는 대도시다.

현지 관객들은 한목소리로 '영웅'을 극찬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한국 뮤지컬의 매력에 놀랐다고 했다. 신문 광고를 보고 남편,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는 의사 리우시앙(39) 씨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조금 아는 수준이었는데 영웅을 통해 상세하게 알게 됐다"면서 "몸을 바쳐 조국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존경할 만하다"고 말했다.

조국, 어머니,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사상가 안중근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관객도 많았다.

하얼빈공대 교수인 순빙(46·孫冰)은 "한때 사람들이 저렇게 평화에 대해 갈망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면서 "군국주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하얼빈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도 있었다. 이날 공연은 한국어로 진행됐다. 양 옆 스크린으로 중국어 자막을 내보냈다. 다만 등장인물인 중국인 남매 '왕웨이'와 '링링'의 일부 대사는 중국어로 했다. 본래 한국어 대사인데 현지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왕웨이 역은 장대웅, 링링 역은 이수빈이 맡았다.

한국의 중앙대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공부했다는 중국인 장쉬엔(25)은 "발음을 완전히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하얼빈 시민을 위해 그 정도로 노력했다는 점이 정말 좋다"고 즐거워했다. 유학생활 덕분에 한국어에도 능통한 그녀는 "특히 배우들의 실력이 뛰어났다"고 놀라워했디.

커튼콜에서 안중근 역의 강태을이 등장하자 곳곳에서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 오전 둘러본 안중근 기념관에서 "의미 있는 장소에 와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그는 "막상 무대에 오르니 꿈만 같았다"고 했다. "서울 공연보다 더 울컥했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내 꿈은 아름다운 고향을 지키면서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라고 말한 뒤 수의를 받는 장면이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덧붙였다.

아직 중국은 공연 관람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중국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화장실을 수시로 드나드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관객들은 비교적 차분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몰입하는 것이 느껴졌다. 강태을도 "오기 전 들었던 것보다 객석이 훨씬 조용했다"고 했다. 이종규 인터파크 상무도 "다른 중국 내 공연장보다 집중력이 느껴졌다"고 확인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진 만찬에서 류싱밍 하얼빈시 정무 부비서장은 "'영웅'은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뮤지컬평론가인 고희경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장 겸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만든 뮤지컬을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에 올린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면서 "작품적으로도 이미 국내에서 검증(7차례 공연)이 된 '영웅'인 만큼 한국뮤지컬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웅'은 8일 같은 장소에서 2차례 더 공연한다. 중국 호응에 기반한 여세를 몰아 4월14일부터 5월3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도 오른다. 추가 중국 공연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다.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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