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수당 형태의 ‘기본소득’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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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수당 형태의 ‘기본소득’은 틀렸다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1.02.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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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지난달 20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언제부터인가 아동수당,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육아수당, 청년수당, 농민수당 등에 '기본소득'이란 용어가 뒤에 따라 붙는다. 예컨대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받는 재난지원금도 ‘재난기본소득’ 명칭으로 불리는 식이다. 

근래 사회수당 용도로 지원하는 것임에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모든 수당에 기본소득을 갖다 붙인다. 소득은 경제활동으로 인해 얻은 것이며, 수당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 지급한다. 개념이 엄연히 다름에도 수당을 기본소득으로 혼동하는 일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국민, 즉 신생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가장 기본적인 최저소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에는 노동의 제공이나 노동 의사와 같은 조건이 전혀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이들에겐 단순명쾌한 매력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기본소득의 최초 주창자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면, 1960년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빈곤층이 생계를 유지할 최소한의 액수를 국가가 지급하며, 대신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는 없애는 것이다. 이후 1980년대 말, 벨기에 경제학자 판 빠레이스가 기본소득운동을 일으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기본소득제도는 간단히 말해 우파 형, 좌파 형으로 나뉜다. 좌파 형도 사회보장제도, 즉 복지제도를 없애는 점은 동일하지만 대신 우파 형태의 최저생계비보다는 더 많은 액수를 달라는 점이 다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운동은 2014년 무렵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먼저 한겨레신문이 선두에서 기본소득 담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어서 노동당, 녹색당, 구 사회당 계열의 당원들이 기본소득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때부터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등 단체들이 생겨나 서구의 기본소득운동 단체들과 연대하기 시작하였다. 

학자 중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 설계도를 제시한 강남훈 교수(한신대) 등은 기본소득제의 대표 주자들 중 한 사람이다. 기본소득제에 비판적이었던 필자는 2014년 내내 기본소득 주창자들과 크게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얼마나 논쟁이 격렬했는지 그로 인한 인간관계 단절 등 후유증까지 만만찮게 얻었다. 

당시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각기 주장하는 액수에 차이가 있었지만, 강남훈 교수의 방식은 국민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기본소득을 연간 360만원(월 30만원)으로 상정했다.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으로 어림잡으면, 1년에 총 181조5000억 원이 필요한 셈이다. 그럼에도 그때만 해도 재원 마련 방안은 차치하더라도 기본소득 개념에는 충실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최근 들어 여러 수당 형태로 지급되는 용도를 두고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왜곡되기 시작했다. 정치인 중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재명'하면 곧 '기본소득'이 떠오를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문제는 이 지사가 기본소득이 아님에도 각종 수당에 기본소득 명칭을 사용하면서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다보니 타 지자체에서도 경쟁적으로 아동수당에도 아동기본소득, 재난지원금도 재난기본소득 이런 식으로 불리는 것이 다반사다. 

근래 이 지사는 기본소득 구상을 밝혔는데, <한국형 기본소득> 단기 계획으로 국민 1인당 연간 50만원 지급(연간 26조) 방안이다. 중기 계획으로는 1인당 연간 100만원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소득이 아니다. 단지 사회보조금 혹은 사회수당일 뿐이다. 기본소득이 아님에도 자꾸 기본소득이라고 주장을 펼치니 논란이 빚어진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이제 정치권으로 옮아가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회수당이라는 용어는 <사회보장기본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다.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를 보면 “사회보장”이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에 명시돼 있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 제도에는 여러 형태로 지급되는 수당 명목을 어디에 포함시킬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재난지원금,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 새로운 형태의 수당들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위험 혹은 필요에 의해 지급되는 ‘사회수당’을 <사회보장기본법> 정의에 포함시켜 구분해야 맞다 생각한다. 

혹자는 '여러 수당 형태에 기본소득을 붙이고 안 붙이고가 중요한가?'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개념이 왜곡되면 전체 방향이 잘못 된다.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일이 아닌가. 또한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말대로 기존의 복잡한 사회보장제도를 모두 없애고 기본소득으로 정리하자는 주장은 가능하지도 않다. 사회보장제도는 복지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인구 집단의 사회적 위험과 생애의 특성에 맞게 사회적 합의를 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복잡한 것은 당연하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바람과 달리 현재 지구상에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없다. 물론 기본소득이란 형태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나라는 있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자주 거론하는 미국 알래스카 주는 석유가 생산되기 때문에 1년에 한번 씩 배당금을 준다. 

알래스카는 1976년부터 알래스카 거주자에 한해서 주의 석유 수입 일부를 기금에 예치한다. 그래서 매년 10월에 배당금을 거주자에게 나눠준다. 배당금은 매년 다르다. 가장 많이 받았던 해가 2014년으로 배당금은 1인당 1,884달러였다. 알래스카의 배당금 지급 형태를 기본소득이라 부르는 것보다 ‘자본소득’이 정확한 용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사례로 핀란드가 거론된다. 핀란드는 우파 정부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한 적 있다. 25세~58세 성인 중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월 560유로(한화 약 70만원)씩 2018년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했다. 그 후 기본소득제는 중단됐다. 기본소득제를 두고 국민투표까지 했던 스위스는 국민 76.7%가 반대하여 부결됐다. 이유는 지속가능한 재원조달 방식의 불투명이었다.

기본소득 실시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기본소득의 액수다. 액수에 따라 국가 재정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재원조달 방식이다. 어떻게 재원조달을 할 것인지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올해 국가 채무 1000조원에 육박하는데다, 지난해 국세, 법인세 등 세수가 감소했다. 무작정 재정 살포는 다음 세대에 빚만 안겨주는 꼴이 된다. 

셋째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어디까지 대체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이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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