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이 어떻게 바꼈길래···빙상연맹 시끌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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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이 어떻게 바꼈길래···빙상연맹 시끌시끌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2.03.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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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천천히 달리는 것 막고자 '허리 펴면 실격' 규정 급조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민정 기자]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경기에서 전세계 어디에도 없던 규칙을 급조해 레이스 직전 선수들에게 통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도자가 항의하자 '항의 방식이 잘못됐다'며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일반부 1만m 경기를 앞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 감독관을 맡은 빙상연맹 경기이사가 갑자기 출전 선수들을 모아놓고 2분여간 새롭게 추가된 규칙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경기 감독관이 알린 새로운 규칙은 '반바퀴 이상 허리를 펴고 레이스할 경우 실격', '모두가 허리를 펴고 달리면 재경기'였다.

스피드스케이팅은 2명씩 조를 이뤄 레이스를 펼친 뒤 기록을 잰다. 모든 선수가 레이스를 마친 후 기록이 빠른 순서로 순위를 정한다. 

하지만 이번 동계체전 남자 일반부 1만m 경기는 모든 선수가 한꺼번에 출발해 결승선에 들어온 순서로 순위를 정하는 '오픈레이스'로 치러졌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유일하게 오픈레이스로 치르는 매스스타트처럼 경기를 진행한 것이다. 

오픈레이스로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이 레이스 초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허리를 펴고 천천히 달리다가 막판에 속도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쇼트트랙 1500m 경기를 떠올리면 된다. 

선수들이 이런 레이스 운영을 하는 것을 방지하겠다고 '허리를 펴지 말라'는 규칙을 급하게 추가한 것이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규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규칙이 적용된 적은 없었다. 

실업팀 지도자 A씨는 "경기 전날 열린 감독자회의에서 1만m를 오픈레이스로 치르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감독자회의 때 경기 감독관은 참석하지 않았다"며 "감독자회의 때 '허리를 펴지 말라'는 규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레이스 직전 갑자기 선수들에게만 공지해 지도자들도 나중에 선수들에게 듣고 알았다"고 전했다.

남자 일반부 1만m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청각장애가 있는 선수는 경기감독관이 새롭게 알린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해 경기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선수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설명하는 장면을 본 지도자가 상황 파악을 위해 다가가자 경기 감독관이 반말로 소리를 지르며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출전하는 동계체전 1만m 경기가 오픈레이스로 치러지는 것이 한국 장거리 선수들의 경기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체력 소모가 큰 남자 1만m 경기가 진행되는 국내 대회는 많지 않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대회에서도 매번 1만m 경기가 열리지는 않는다. 

1만m 경기가 열리는 대회에서라도 올림픽, 국제대회와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줘야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한국 장거리 선수들은 국제대회 남자 5000m, 1만m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이 두 종목 출전권을 딴 선수는 없었다. 

A씨는 "장거리 선수들이 1만m 레이스를 치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5000m는 모든 대회에서 열리지만, 1만m는 다르다. 선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타보고,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줘야한다"며 "오픈레이스로 경기를 치르는 것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빙상연맹 관계자는 "규정상 동계체전 남자 일반부 1만m 경기를 오픈레이스로 치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전 동계체전에서 남자 일반부 1만m 경기를 오픈레이스로 치르지 않은 적이 있는데, 당시 반발이 있었다"면서 "동계체전 남자 일반부에는 동호인 선수도 출전한다. 동호인 선수는 혼자 타면 경기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동호인 선수도 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픈레이스로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빙상연맹은 일부 지도자가 듣도보도 못한 규칙을 갑자기 도입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항의하는 과정에서 "스케이트를 타셨던 분이냐"는 말을 해 경기 감독관이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 이유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25일 열린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지도자가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해 항의하거나 이의제기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절차에 맞춰 해야한다. 항의 과정에서 고성이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항의한 지도자에 대한 징계를 따지자는 자리가 아니다. 관련자를 모두 불러 사실 관계를 따져볼 것"이라며 "'허리를 펴지 말라'는 규칙 적용이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W

m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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