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이도]업적 이면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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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이도]업적 이면의 민낯
  • 시사주간
  • 승인 2016.10.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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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기자]
 “‘중전! 참으로 할 말이 없소. 내 명색이 나라의 만인지상(萬人之上) 금상이지만 속수무책이니 무슨 낯으로 중전을 보리오.’ 임금이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중전의 수척하고 슬픔에 젖은 모습을 보는 눈에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오늘밤 연화방 수강궁 상왕 전하 앞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놀다가 이제야 오는 길이오. 상왕 전하는 주상이 나를 위로하니 지극히 즐겁구나라 하셨소. 박은, 이원 양 정승, 그리고 형조 조말생, 맹사성까지 즐겁다고 춤추더군요. 무엇이 즐겁습니까? 중전의 친아버지요, 나의 장인을 날만 새면 황천길로 가게 만들어 놓고 무엇이 즐겁습니까?’ 세종이 마침내 더 참지 못해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음을 삼켰다. 참으려고 애쓰던 중전이 통곡을 시작했다. ‘전하, 정녕 길이 없는 것인지요. 신첩 숙부의 목숨을 빼앗은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이번엔 아버님을…. 정말 못난 딸자식 때문에 집안이 이 무슨 날벼락이랍니까. 전하….’ 왕과 왕비가 넓디넓은 궁전 침실에서 목놓아 통곡하는 목소리는 밖에서 슬퍼하던 상궁들의 가슴을 쥐어짰다.”(‘두 개의 태양이 뜨다’ 중)

정치 논리에 휘말려 부인의 친정이 희생되자 이도(1397~1450)는 소리 내 운다.

눈물과 고민이 많고 특히 주변사람들에게 정이 깊은 이도가 장편 ‘세종대왕 이도’ 제 1, 2, 3권으로 돌아왔다. ‘세종실록’ 127권을 비롯, 세종과 관련된 ‘조선왕조실록’ 163권과 사료를 섭렵한 결과물이다. 당대 조선의 정치 상황, 김종서 장군과 여진 말에 능통한 화적 두목 홍득희를 중심으로 한 4군6진 개척을 교차해 소설적 흥미도 높였다.

“이튿날 아침 해가 중천에 돋았을 때 세종은 급보를 받았다. ‘무엇이, 서울이 불바다가 되었다고? 누구의 짓이냐?’ 세종은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이틀 뒤 의정부에서 한양 대화재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불이 나자 대신들의 노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뛰어나와 난동을 일으키고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불을 지르라고 지시한 자는 화적 강원만이라고 합니다.’ 한성부윤 김소가 보고했다. ‘강원만이 혼자 획책한 일이란 말이오?’ ‘남자 전복을 입은 여자 두목이 말을 타고 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불화살을 쏘는데 대낮에 명궁이 쏘는 것처럼 정확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바로 홍득희로구나. 놀라운 일이야. 놀라운 일.’ 세종이 착잡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했다.”(‘권부의 중심을 향해 칼을 겨누다’ 중)

작품 속 세종은 왕이 하는 일이 죄인 처형하고 유배 보내는 것밖에 없느냐며 술에 취해 한탄한다. 형 양녕대군이나 아들 임영대군이 온갖 망나니짓을 하고 다녀도 싸고돌기에 바쁘다. 세상을 뜬 왕후를 위해 시작한 불당 건립에 대소 신료는 물론 전국의 유생까지 반대해도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금주령을 시행하면서도 스스로는 궁궐의 주연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삼강행실도’를 전국에 배포할 정도로 윤리 교육에 고심하지만 측근의 그릇된 행실은 슬쩍 눈 감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황희 등 아끼는 신하는 잘못을 저질러도 계속 중임을 맡는다.

고민하고 한탄하고 정에 흔들리면서도 “모든 일은 사람을 중심으로”라는 말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자신의 고뇌를 하나하나 결실로 바꿔간다. 명재상 황희, 천민 출신 기술자 장영실, 천재 악사 박연 등 반대를 무릅쓰고 기용한 이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낸다. 강력한 군왕인 아버지 태종의 입김이 닿지 않는 분야를 찾다가 육성하게 된 집현전이 왕의 길을 든든하게 지원한다. 부인에게 마음을 쓰는만큼 다른 사람들도 챙기다 보니 궁에서 일하는 무수리에게도 출산 휴가를 준다. 여린 마음은 고통 받는 상민과 천민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깊고 외로운 고민은 ‘훈민정음’ 창제라는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작가 겸 언론인 이상우의 장편소설이다. ‘해동 육룡이 나르샤’, ‘정조대왕 이산’, ‘북악에서 부는 바람’, ‘안개도시’, ‘화조 밤에 죽다’, ‘신의 불꽃’ 등으로 주목받은 이씨는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전3권, 시간여행. ‘대왕세종’(2006)의 보충, 새단장 판이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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