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설명하라,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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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설명하라, 논하라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3.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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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사진=뉴시스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대학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시험의 커닝을 허용한 별난 교수였던 저, 지금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학정농단을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학교를 다녀본 호모사피엔스 크로마뇽인 중 커닝페이퍼를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만큼 시험은 공부를 많이 했어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결과를 자꾸 염두에 두다보면 적어도 ‘가벼운 부정’ 정도는 저지르고 싶은 유혹이 느껴집니다.

제가 커닝을 암묵적으로 허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가 ‘설명하시오’가 아닌 ‘논하시오’일 경우 설령 남의 답안지를 본다 해도 정답 작성이 불가하거든요. 4지선다형으로 몇 번 문제의 답은 몇 번이다...로 정해져 있을 경우가 아닌 다음엔 오픈북을 해도 쉽게 쓸 수 없습니다.

설명(說明)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나 ‘논(論)’으로 넘어가면 사뭇 달라집니다. 적극적인 사고와 창의력으로 비평하며, 잘잘못을 들어 따지고, 깊은 의미를 이론적으로 파헤쳐 판단하는 것이 되니까요.

20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S대 케임브리지 종교학 시험에 출제된 주관식 문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이었습니다.

시험시작 종과 함께 일제히 답안지에 펜촉 닿는 소리가 슥삭슥삭~~ 들렸지만 유독 한 학생만 깊은 묵상에 잠겨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감독관의 주의에도 이 학생은 시험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학생은 답안지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커닝 페이퍼가 필요한 학생이었을까요. 화가 난 감독 교수 일갈 “귀군은 여태까지 뭘 하고 있나? 백지 제출을 할 셈인가? 영점 처리로 학사경고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얼른 뭐든 답안을 채워!”

감독의 최후통첩에 딴청을 피우고 있던 학생이 돌연 시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단 한 줄만 써넣고 시험장을 유유히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한 줄의 답안지가 만점을 받았고, 이 대학 신학과의 전무후무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영국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사람, 조지 고든 바이런이었습니다.

대학의 신학교수들을 감동시킨 바이런이 ‘논(論)’한 촌철살인 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줍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답이 시인답구나 싶다가도 신학적 해석이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주저리주저리 적은 영양가 적은 사설보다 짧지만 명징한 이 한 줄에 철학, 문학, 과학이 다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글뿐 아니라 말도 그렇습니다. 아는 바가 부족할 때 설명이 확실치 않고 중언부언, 꼬리 또한 쓸데없이 길어집니다. 거짓말일 때 변명과 해명의 논리가 명쾌하지 못해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말이 많아집니다. 내용 보단 예뻐 보이도록 꾸밀 때, 수식어가 수도 없이 등장해 살코기는 없고 비계만 둥둥 떠다니는 설렁탕처럼 되고 맙니다.

마음에 없는 말, 성의 없을 때의 말도 감 따는 장대, 그러나 약해서 흐느적흐느적 거리는 막대기 마냥 길기만 합니다. 진정성은 못 갖추고 그저 그럴듯하게 말은 해야겠고...그래서 그렇게 됩니다.

어렵지만 찾아야할 겁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바이런 식의 짧지만 훌륭한 말을요!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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