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 '휠체어 투혼' 예술로 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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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휠체어 투혼' 예술로 승화하다
  • 시사주간
  • 승인 2016.10.0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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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기자]
  무대 위 휠체어에 앉은 윤석화(60)는 연신 오른쪽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격한 대사를 내뱉을 때마다, 그곳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 6대가 부러진 중상의 후유증이다.

전치 6주 진단이 나왔다. 담당 의사는 윤석화의 회복이 우선이라며 그녀가 무대에 오르는 걸 한사코 말렸다. 윤석화는 그러나 관객과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7일 저녁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펼쳐진 연극 '마스터 클래스'(연출 이종일) 무대에 올랐다. 불과 병원에 입원한 지 2주 남짓 만이다. 원래 예정됐던 개막일은 지난달 27일. 그간 병상에 누워서도 무대만 떠올렸던 그녀다.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그녀의 투혼으로 인해 또 다시 부활했다. 작가 테렌스 맥널리가 쓴 '마스터 클래스'는 칼라스가 목소리가 나빠져 무대에서 은퇴한 뒤 1971, 1972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기성 성악가를 상대로 연 마스터 클래스 현장을 담았다.

극에서 불안한 심리 상태의 칼라스의 모습은 휠체어에 앉은 윤석화의 혼신을 다한 연기로 생생한 입체감을 얻었다. 일어설 수 없어 생각해낸 묘안이었지만, "모든 것을 바쳐야, 그제야 예술로 존재"한다고 절규하는 윤석화는 칼라스에 더욱 다가갔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실제 온몸을 바친 그녀의 투혼에 '마스터 클래스'는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하지만 옆구리의 고통 때문에 종종 대사 막판에 숨이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호흡마저 복잡한 심리 상태의 칼라스 캐릭터에 녹여내는 그녀의 저력에 객석 곳곳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1998년 2월 강유정이 연출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윤석화의 대표작을 넘어 인생을 구원했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당시 이 작품으로 최연소 이해랑연극상을 거머쥐었을 뿐더러 스스로도 위안을 받았다.

데뷔 40년 기념작으로 올해 3월 LG아트센터에서 다시 선보였다. 자신의 배우 경력 뿐 아닌 삶마저 바꾼 이 작품을 18년 만에 다시 꺼냈다. 이후 당시의 슬럼프 못지않은 갖은 고난을 겪어온 윤석화는 한층 칼라스의 심정에 가닿았고 '여전한 현역 디바'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후 박정자, 손숙 등 연극계 거목들과 함께 출연한 연극 '햄릿'에서 청초한 오필리어마저 어색함 없이 소화했던 그녀는 뜻하지 않게 다시 찾아온 위기 속에서 '마스터 클래스'로 또 기적을 만들었다.

아픈 과거를 회상하는 1막과 2막은 핀 조명, 그림자 효과 등 때문에 일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데, 윤석화는 정신력으로 물리적인 아픔을 이겨내고 굳건히 일어섰다. '마스터 클래스'는 다시 윤석화의 인생작이 됐다.

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듣는 '토니' 역의 뮤지컬스타 양준모 등 출연 배우들과 함께 한 커튼콜 무대에서 눈물을 터뜨린 그녀는 기다려준 관객에게 특별한 선물을 줬다. 이탈리아 작곡가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가 만든 민요로 '오 나의 태양'이라는 뜻의 '오 솔레미오'를 함께 불렀다. "관객분들은 '저희의 태양입니다. 기다려주시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또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는 윤석화를 응원하러 온 인사들로 가득했다. 그녀와 절친한 박정자와 손숙은 부산국제영화제 등 바쁜 스케줄에도 부상 후 처음 무대에 오르는 후배를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윤석화는 이들을 보자마자 또 눈물을 터뜨렸고, 이들은 얼싸안았다. 윤석화는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감돌았다. 손숙은 "연극이 너를 일으켜 세웠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유인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장은 "오늘은 윤석화가 아니면 못했을 순간"이라고 했다. 윤석화는 "이제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16일까지 공연하는 이번 앙코르 무대로 생애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를 선보인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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