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속의 영원 위해 살고 있다]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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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속의 영원 위해 살고 있다]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7.12.2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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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사진 / 샘터


[
시사주간=황영화 기자] "이런저런 헛소문의 주인공이 되면서 나는 느끼는 게 많았다.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부분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정말로 위독한 순간의 나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좀 더 자주 그려보게 되었다."(39쪽)

이해인(72) 수녀가 6년 만에 신작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을 냈다.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보낸 반세기를 감사하면서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이번 책을 펴냈다.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입니다.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언어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일상 속에 머무는 나.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이해인의 시, '기다리는 행복' 전문)

1부 '일상의 행복'에서는 일상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스쳐가는 사물 등을 글의 소재로 다뤄 일상 이야기를 전했다.

2부 '오늘의 행복'은 좋은 환자가 되기 위한 십계명, 우정의 꽃을 가꾸는 열 가지 비결 등 삶의 지혜를 담았으며, 3부 '고해소에서'는 기도 이야기가 중심이다.

"어느 수도원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우리 집에서도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은 삼종기도를 위한 큰 종을 치고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를 위한 작은 종을 매 기도 시간 5분 전에 친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공동 독서를 듣다가 이야기해도 좋다는 신호로, 성당에서 퇴장하는 신호로, 중요한 공지가 있다는 신호로 원장 수녀가 종을 치곤 한다. 이승에서의 수도 여정을 마치고 어느 수녀가 임종했을 때에는 수련수녀가 성당 앞에서 아주 오랫동안 특별한 모양의 징으로 천천히 서른세 번의 조종을 친다."(150쪽 '수도원의 종소리를 들으며' 중에서)

4부 '기다리는 행복'에서는 삶에 대한 다짐, 5부는 '흰구름 러브레터'에는 이별의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편지 글을 담았다.

6부 '처음의 마음으로-기도 일기'에는 1968년 5월 첫 서원 이후 1년간의 단상 140여 편을 수록했다. 이 밖에 이해인 수녀가 간직해온 과거 사진을 더했다.

"지난 수십 년간 모아둔 다른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도 내가 특별히 아끼는 두 가지 글씨 선물이 있다. 하나는 법정 스님께서 어느 날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보내주신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인도 콜카타에 마더 데레사를 뵈러 갔을 적에 받은 뜻깊은 영문 글판이다. 두 분 다 세상을 떠나신 지금 그 글귀는 나에게 새로운 기쁨과 감동을 준다."(82쪽 '나를 깨우는 글씨' 중에서)

책의 출간을 준비하던 지난 가을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준 가르멜 수도원의 언니 수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서문에서 이해인 수녀는 "언니의 빈자리를 통해 나도 언젠가 그렇게 떠날 날이 있음을 절감했다"며 "더욱 충실히 '순간 속의 영원'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샘터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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