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앙겔라 메르켈의 '대체불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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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앙겔라 메르켈의 '대체불가 리더십'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1.05.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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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AP/뉴시스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유럽 정치 여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2005년에 총리에 취임한 후 연속 4연임을 하며 16년간 재임하게 된다. 메르켈은 헬무트 콜 총리에 이어 역대 최장수 기록이다. 메르켈은 51세 나이로 독일 역대 최연소 총리 그리고 최초 여성 총리다.

메르켈은 재임 기간 동안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을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려놓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다. 총리에 취임한 후 대연정을 통해 독일의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정당의 이념이 다름에도 국가를 위한 공동통치 형태의 대연정은 한국 정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형태다. 2005년 메르켈이 속한 기민련(기독교민주연합)과 기사련(기독교사회연합) 그리고 사민당(사회민주당)과의 대연정은 독일 정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연한 정치체제다. 이후 정당들과 연정 파트너를 바꿔가며 대단한 정치력과 노련한 지도력으로 헤쳐나간 메르켈이었다.  

평소 검소한 옷차림과 수수한 화장, 침착하고 절제된 행동,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대단한 집중력을 가진 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그녀는 스탈린식 공산주의 치하의 동독 출신으로 시골 목사의 딸이었다. 학생시절 물리학을 전공하여 최우등 성적에 특히 수학이 뛰어났다. 

메르켈의 생애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이 겪었던 역사적 부침과 유럽의 복잡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 정치인이다. 1945년 나치정권이 붕괴한 후 이듬해 동. 서독은 분리됐다. 동. 서독 왕래는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나 동독의 생활수준은 서독보다 훨씬 낮았다. 비교적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학업에 열중, 대학 재학 중 결혼을 하여 동베를린에 거주하였다. 메르켈은 라이프치히 대학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동독 치하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며 약간의 정치적 참여도 하였다. 그러던 중 메르켈의 삶은 1989년 공산주의 체제 붕괴가 시작되면서 극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1989년 동독이 붕괴됐고, 1991년 소련 체제가 무너졌다. 메르켈은 1990년 동독 새 정부의 당 대변인으로 임명돼 정치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다. 당시 독일은 독일 통일을 위한 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었던 격변의 시기였다. 메르켈은 여성이었지만 실용적이고 단순한 옷차림과 늘 짧은 머리를 유지하며 일처리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1990년 8월 드디어 통일조약이 합의돼 공식적인 통합이 마무리 됐다. 이때 메르켈은 통일 독일의 기민련에 입당하였다. 독일의 정당들은 마초적인 남성들이 우글대는 곳이다. 특히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유럽 전체를 통틀어 오랜 역사를 가진 사민당은 말할 것도 없다. 메르켈이 입당한 기민련의 헬무트 콜 내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당 환경에서 어떻게 메르켈이 장장 16년 동안 정치적 역경을 헤치며 전진했는지 경이롭다. 

메르켈의 정치이력은 콜 정부에서 맡은 여성청소년부장관(현재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으로 전격 발탁되면서부터다. 당시 35세에 불과했던 동독 출신의 장관 기용은 정치권의 조소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콜 내각에서 여성 배려 측면도 분명히 존재 했겠지만 무엇보다 메르켈은 흠잡을 곳 없이 일을 잘했다. 정치의 시작은 동독 출신 여성에 대한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지라도 이후 환경부장관을 역임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기후변화문제에 대한 어젠다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1998년 정권이 사민당으로 넘어가자 메르켈의 진가가 드러났다. 기민련에서 착실히 정치 커리어를 쌓은 메르켈은 당 사무총장에 당선되며 노령화된 당을 변화시키며 당수가 됐다. 정치거물인 사민당 소속 슈뢰더 총리를 상대로 메르켈은 대립과 설전, 은밀한 협상력으로 정치적 경쟁자들을 하나 둘 무너뜨렸다. 슈뢰더의 인기 추락은 메르켈의 기회였다.

2005년 11월 메르켈은 총리가 됐다. 그녀는 즉시 대연정 협상에 나섰으나 슈뢰더는 거절했다. 하지만 슈뢰더는 이미 몰락하고 있었고, 사민당 지도부는 부총리직과 내각에 참여했다. 독일 정치의 장점이 바로 대연정이다. 대립은 할지언정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 서로 권력을 분할하는 협상력에 있다. 메르켈의 인기는 치솟았다. 통일 비용의 재정적 부담으로 경제는 타격을 입었고 국민소득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노련했다. 예산 문제를 다룸에 있어 꼼꼼하고 전문적인 수학자로서의 장점이었을까. 독일 경제를 살려내며, EU 재정 위기 문제까지 잘 처리하며 유럽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이어 닥친 세계 금융위기 극복, 여기에다 그리스가 부채문제로 파산 위기에 처하자 유럽 국가들과 협상하여 그리스 구제금융 승인을 이끌어 냈다. 메르켈의 정치적 행로에 있어 어느 해도 쉬운 적이 없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의 압력, 국민들의 원전 반대로 메르켈 정부의 원전 정책은 오락가락하였다. 

메르켈 정치 최대 위기는 2015년에 터진 난민 사태였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탈출한 난민은 4백만 명에 달했다. 난민자들은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EU국가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이때 메르켈은 독일은 이민자들을 도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말로 국민들을 설득하였다. 하지만 혼란은 계속돼 쾰른에서 이민자들이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난민 문제는 그녀를 계속해서 수세로 몰고 갔다. 

그럼에도 메르켈은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었고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전무후무한 여성 정치인이 됐다. 퇴임을 앞둔 메르켈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가 정치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했다. 메르켈이 정치를 마치는 순간까지 위기에 맞서게 했던 것이다. 

메르켈만큼 참을성과 끈기, 침착함, 명석함을 갖춘 여성 지도자를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득,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한 가지가 뛰어난 수학적 재능이 아닐까? 메르켈의 정치 역정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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