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스피치’ 무방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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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스피치’ 무방비 대한민국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6.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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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4일 유튜버 방송인 A씨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현 검찰총장 후보자의 자택 앞에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살해 협박 및 증오 발언을 해 경찰에 체포됐다. 사진 / 유튜브 캡처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증오 발언·선동인 ‘헤이트 스피치’가 인터넷 방송·SNS를 이용해 파급력이 큰 가운데 이에 대한 법적 제재, 사회적 불이익이 적어 이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세계적으로 외국인 혐오, 인종 차별, 여성혐오, 무관용, 반유대·반이슬람 증오의 광풍이 목도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 증오로 가득 찬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혐오 발언이 번성할 수 있는 새 영역을 제공했으나 활동을 감시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헤이트 스피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헤이트 스피치란 국제적으로 통일된 정의는 아직까지 없는 상태이나 현재까지는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해 명백한 공격적 의도를 품고 차별·모욕적 표현을 드러내 혐오·증오를 선동·조장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서울대 인권센터에서는 우리말로 ‘혐오표현’이라 지칭하고 ‘보호돼야할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혐오 표현’이라 정의하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역사로 입증됐다.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집권한 독일 제3제국 시절 나치의 선전 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는 반유대주의 선전을 통해 증오 선동의 효과가 조직적 학살인 ‘홀로코스트’까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일본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치 않는 시민 모임)의 혐한(嫌韓)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난민 혐오도 이와 같다. 

과거의 헤이트 스피치가 라디오, TV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이뤄졌다면 최근의 헤이트 스피치는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개인 방송을 이용해 헤이트 스피치, 증오 컨텐츠를 퍼뜨리는 방식이다. 주류 방송과 통신 매체가 현행법에 의해 제재를 받고 감시를 받는 반면 SNS와 인터넷 방송은 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시간대와 소재 선정에 구애를 받지 않아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헤이트 스피치는 의도적인 악의적·비논리적 주장으로 인해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증오심을 극대화시키고 차별·폭력을 쉽게 정당화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한 극단적 발언이 헤이트 스피치의 특징이라 인터넷과 맞물려 이에 동조하는 구독자, 추종자를 쉽게 늘릴 수 있다. 동시에 인터넷 방송을 통한 기부, 광고 등 금전적 수익까지 얻을 수 있어 헤이트 스피치의 파급력은 무형이 아닌 실제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헤이트 스피치 등 증오 선동은 인터넷 방송에서 극단적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에서 범인 브렌튼 태런트는 총기로 모스크 내 무슬림 신도 50여명을 살해하고 50여명을 부상입혔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했다. 사진 / 유튜브 캡처


헤이트 스피치가 실제 범죄로 나타난 사례로는 해외의 경우 이슬람 혐오로 총기난사를 해 50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 당한 사건이 있다. 특히 범인은 이 과정을 전부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해 충격을 줬다. 국내의 경우 최근 두드러진 사례로는 지난 17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정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있다. 극우 성향의 유투버 A 씨는 지난 4월 24일 윤 후보자의 자택 앞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살해 협박을 하기도 했다. A 씨는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특특검 수사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의 집 앞에서 신변을 위협하고 사진을 불태우기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국가는 상당수 유럽이나 영미권 국가에 몰려있으나 아시아로는 일본, 남미로는 칠레, 브라질이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형법 130조에서 ‘공공의 평온을 교란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행위를 한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며 증오 선동을 한 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도 국적·인종에 대한 혐오를 억제하는 ‘헤이트스피치 대책법(일본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증오발언에 관한 법적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 특성상 거의 없는 편이나 증오 발언이 알려질 시 소송 또는 퇴학, 해고 등 사회적인 불이익이 강한 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헤이트 스피치를 명시하거나 금지하는 법 또는 제재 수단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정 인종 또는 개인,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해 현행법은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로 한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성소수자를 모욕하는 컨텐츠가 현재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는 특별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으나 국회 정상화 난항 정국으로 계류돼있는 상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유한국당 의원 3인의 망언이 퍼지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이마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은 바 있다.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국민적 토론과 입법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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