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채식결정권. '신념' VS '지나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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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채식결정권. '신념' VS '지나친 요구'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1.1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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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군대 채식선택권 보장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사진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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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12, 내년 초 군 입대를 앞둔 정태현씨 등 3인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진정 내용은 군 복무 중인 채식주의자(비건)들의 '채식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 이들은 "군 복무 중 채식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양심의 자유,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국방부에 군대 내 단체급식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군대 식단은 13찬이 기본이며 3찬에는 고기 및 생선을 재료로 한 요리 및 반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최근 젊은 층에서 채식주의자가 늘어나면서 이 음식들을 먹지 못해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식단 중 쌀밥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채식 식단이 거의 없어, 일주일만에 10kg 체중 감량이 됐거나,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고 구토, 복통 등 이상 증세를 보이고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한 채 훈련을 받았다""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무기력, 우울증에 고통스러워하는 게 채식주의 군인들의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 진정에 함께 한 시민단체들은 12일 기자회견에서 논산 육군훈련소 4주 훈련 식단을 예로 들며 "비건은 전체 훈련기간 28일 중 평균 8.6일은 쌀밥과 반찬 하나만 먹을 수 있고, 13.6일은 쌀밥만 먹을 수 있으며, 2일은 반찬 한 가지만 먹을 수 있고 1.6일은 굶어야한다"면서 "채식인들에게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식단은 그 자체로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다. 제한된 음식으로 인한 영양적 문제뿐 아니라 사실상 육식을 강요하는 군대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위협받는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2, 국가인권위원회는 교도소가 채식주의자 수감자의 채식 위주 음식 요구를 거부한 것에 대해 "신념에 따른 채식을 거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결론낸 바 있다. 당시 이 수감자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고 채식주의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한 것이었기에 '취향'이 아닌 '신념'의 문제였으며, 개인 양심의 자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국가가 보장해야한다고 인권위는 권고했다.

따라서 채식선택권은 취향이 아니라 양심과 신념에 따른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먹을 권리'와 관련이 있어 병역의 의무를 지운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리투아니아 등 해외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고 있고, 포르투갈은 모든 공공건물이 비건(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식품을 제공해야한다는 법안이 통과된 사례도 이들의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여론은 '채식선택권 보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채식을 하지 않는 군인들까지 채식을 강요한다', '단체 생활을 해야하는 군인이 개인 욕구를 지나치게 요구한다' 등 비판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채식 메뉴를 따로 마련할 경우 세금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채식 식단을 제공하려면 조리병 취사 교육과 함께 조리 시설과 조리 인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다. 단체 취사 과정에서 일부 채식주의자들을 분리해야하는데 자칫 채식주의자를 위한다고 하는 일 때문에 다수가 피해보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현재는 육류가 나올 시 쌈채소를 제공하는 등 식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권위의 권고가 나온다면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녹색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식단을 채식주의자 위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채식주의자가 맨밥만 먹는 일은 없도록 메뉴를 따로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라며 "젓갈이 있는 김치도 먹지 못하고 쇠고기맛 조미료나 멸치 육수가 있는 국도 먹지 못하는 비건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채소, 나물반찬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고 육류 맛이 나는 조미료를 빼는 방식으로 예산이나 추가 인력 확충 없이 실천할 수 있다. 반찬 확보를 비채식주의자의 선택권을 뺏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물론 인권위가 권고를 한다고 해도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국방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에 녹색당은 내년 초 채식권 보장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의 '채식선택권' 보장 문제는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에게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권리를 보장해줘야하는지, 국가가 지켜줘야 할 '양심의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고 있으며 군 사기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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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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