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전 동부(DB) 회장, 1심 선고 돌연 취소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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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전 동부(DB) 회장, 1심 선고 돌연 취소 이유는?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02.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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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 '변론 재개'
검사 측 의견서 새로운 증거 판단 가능성 높아
결심공판서 檢 징역 5년 구형…'형량 늘어날까' 관심 
지난해 10월25일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25일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김준기 전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의 1심 선고가 취소되고 변론이 재개됐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여비서를 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변론 재개' 여부는 검사나 변호인 측의 신청이 있을 경우, 법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피고인의 양형에 영향을 줄만한 새로운 증거 판단을 위한 변론 재개가 대부분이다.  

◆선고 공판 하루 앞두고 '변론 재개' 결정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6단독(김용찬 판사)는 당초 21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김 전 회장의 선고 공판을 미루고 하루 전날인 지난 20일 변론 재개를 결정했다.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은 지난달 21일 결심공판 이후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결심공판 당시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 받았다. 

변호사 측이 아니라 검사 측에서 의견서를 제출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검사 측이 제출한 의견서에 김 전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거 혹은 김 전 회장의 형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소한 검사 측의 구형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결심공판 당시 검찰은 "범행 내용과 죄질, 범행 인정 및 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추행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는 피해자들에 대해 위력을 이용해 추행했다고 판단한 것. 

김 전 회장 변호인 측은 피해자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관계 자체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믿었다"면서 "이들에 대해 위력으로 강제추행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1974년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왼쪽)과 1981년 6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모습(오른쪽). 화려했던 50년 사업 이력이 '성추문' 사건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사진= DB그룹
1974년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왼쪽)과 1981년 6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모습(오른쪽). 화려했던 그의 50년 사업 이력이 '성추문' 사건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사진= DB그룹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자신의 별장에서 가사도우미를 1년 동안 수차례 성폭행하고, 2017년 자신의 비서를 6개월 간 상습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해 질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귀국하지 않다가 지난해 1월23일 귀국, 경찰에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의 '성추문' 사건은 그의 사업 이력 반세기 중 가장 큰 시련으로 평가된다. 한때 6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10대 그룹으로 이름을 떨친 김 전 회장은 재계에서 오너 4세 회장들이 등장할 때까지 경영 일선을 지켜온 입지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50년 사업 이력 한 번에 '와르르' 김준기는 누구?

김 전 회장은 국내 재계 1세대를 대표하는 이병철, 정주영 회장보다 30~40년 늦게 창업했지만 20~30년 이상을 그들과 경쟁하면서 10대 그룹을 일궈낸 기업인이다.  

1944년 12월4일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현 동해시)에서 태어난 김 전 회장이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군을 제대하고 대학 재학 중이던 1968년 미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전자업계의 미국 우수인재 유치단 일원으로 하버드, 콜럼비아, MIT, 버클리 등 대학과 전자업계를 돌아보면서 충격을 받은 그는 국력의 차이가 무엇인지 실감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에너지원이 바로 기업이라는 사실에 눈 뜬 김 전 회장은 산업보국(産業報國)의 신념을 굳히고, 창업 준비에 착수했다.

1969년 1월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하며 동부그룹의 시작을 알린 김 전 회장은 1980년대 그룹을 재계 30위권에 진입시켰고, 1990년대 20위권, 2000년도에는 마침내 재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69년 창업 첫해 9200만원에 불과 했던 매출액은 2005년 10조원으로 늘어났다. 창업 당시 김 회장이 "75세가 되기 전에 반드시 100억불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자신과 맺은 약속을 15년 앞당긴 결실이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심각한 구조조정과 빚잔치 끝에 동부제철 등 굵직한 제조업 대부분을 포기하고, 2017년 금융, 전자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명을 변경하기 이른다. 

그해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50년 가까이 사용하던 사명은 동부에서 DB로 변경됐다. 당시 재계에는 김 전 회장의 '성추문'이 동부그룹 이미지에 타격을 줄까 사명을 변경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같은 해 질병치료를 이유로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떠났고, 이후 가사도우미와 두 번째 성추문이 터지면서 동부그룹(DB그룹)의 이미지는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20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두 달간 법정 공방 끝에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었지만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이 그의 1심 선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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