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순서를 바꿔보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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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순서를 바꿔보면 산다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6.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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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폭포수 물방망이를 회초리인양 맞으며 큰 소리로 외쳐 대면, ‘자살’이 ‘살자’로 바뀔 것 같습니다. 사진=지리산국립공원
지리산 폭포수 물방망이를 회초리인양 맞으며 큰 소리로 외쳐 대면, ‘자살’이 ‘살자’로 바뀔 것 같습니다. 사진=지리산국립공원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앞뒤를 바꿔도 뜻이나 말 모양이 똑같은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매매, 소개소’가 그렇고 사람 이름으론 ‘조광조, 이남이’, 나라 이름은 ‘스위스’가 그렇죠.

뒤로 읽어도 똑같은 문장도 있습니다. ‘다들 잠들다’, ‘여보 안경 안보여’, ‘담을 넘고 넘을 담’, ‘소주 만병만 주소’, ‘다시 합창 합시다’, ‘바로 크는 크로바’...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뒤를 바꾸면 뜻이 정반대로 달라지거나 사뭇 다른 의미가 되는 말들도 많습니다. 볼까요?

사람이 ‘성실(誠實)’하면 참 좋죠. 그런데 ‘실성(失性)’을 자주 하면 일을 다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건 당장 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일을 ‘금지(禁止)’ 당할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자꾸 미루다가 ‘실상(實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 겪는 ‘상실(喪失)’의 아픔은 얼마나 큽니까.

‘체육(體育)’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육체(肉體)’를 잃을 수 있고, ‘관습(慣習)’을 타파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習慣)’에 얽매여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작가(作家)’가 작품을 열심히 창조해야만 ‘가작(佳作)’을 탄생시킬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가작(假作), 엉터리 모사품 짝퉁 밖에 못 만듭니다.

‘일생(一生)’을 목숨 걸고 살지 않으면, ‘생일(生日)’을 화려하게 맞을 수 없으며, ‘세상(世上)’을 똑바로 살지 않는다는 건 ‘상세(詳細)’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상(思想)’을 똑바로 갖고 있지 않으면 나중에 ‘상사(上司)’가 되어서도 부하에게 무시당하며 삽니다.

‘사고(思考)’하지 않으면 ‘고사(枯死)’당하고, 세상의 나쁜 소리도 듣지 말고 안 좋은 사람들과 ‘단절(斷絶)’하고 살아야 하지 그러지 않으면 인생이 ‘절단(絶斷)’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잘 살아야지(Live) 안 그러면 자칫 악마(Evil)가 됩니다.

‘성품(性品)’을 곱게 가꾸지 않으면 ‘품성(品性)’마저 망가진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고요, 늘 ‘성숙(成熟)’하려고 애써야지 그런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람이 ‘숙성(熟成)’되지 않는다는 건 명약관화합니다.

‘문인(文人)’들의 세계를 잘 파고들지 않으면, ‘인문(人文)’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으며, 언제나 ‘수고’하려는 자세를 지녀야지 쉽게 가려고만 하면 ‘고수(高手)’가 되는 길은 멀고 멀어지고 맙니다.

‘주변(周邊)’에서만 영원히 서성거리지 않으려면, ‘변주(變奏)’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며, 인사(人事)가 만사라 했습니다. 소홀히 하다가 그가 사라지는 사인(死因)이 될 수 있습니다. 애연(愛煙)가는 입에 냄새가 나서 연애(戀愛)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인연(因緣)’을 소중히 하라는 말은 참 명언입니다. 가볍게 여기다가 좋은 ‘연인(戀人)’으로 발전할 기회를 놓칩니다.

‘역경(逆境)’을 참고 견디면 나중에 화려한 ‘경력(經歷)’이 되어 그 사람을 빛낼 수 있습니다.

요즘 남북관계가 살얼음 강을 건너는 것처럼 위험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그러나 건너야할 강이 아닌가요? 북측 사람들은 남북(南北)을 동서남북 방위 순서를 지키지 않고 그들을 앞세워 북남(北南)이라 하는데, 뭔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긴 한숨과 함께 ‘내 힘들다’를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간 끝까지 힘만 들 겁니다. 거꾸로 읽어볼까요? 아, 어마어마한 용기가 불끈 솟는 것 같습니다. ‘내 힘들다’가 우와~~~ ‘다들 힘내’가 되잖습니까!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 지리산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물방망이를 회초리인양 맞으며 큰 소리로 외쳐 대면, ‘자살할 마음’이 ‘잘 살 마음’으로 바뀐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자살’을 오십 번 백 번 중얼대가 보면 어느덧 ‘살자’가 돼있을 것입니다.

꾀를 내는 방법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때로는 반대로 바꿔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말로 변하고 그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세상이 말대로 됐으면 참 좋겠단 생각을 또 해봅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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