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천의무봉? 후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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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천의무봉? 후폐?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7.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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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동현 기자
사진=임동현 기자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저라고 법원에 안 가봤겠습니까. 제 사건은 사실 단순했고, 판사 말씀 새겨들으니 금방 알아듣겠는데, 순서 기다리면서 귀에 들어온 다른 사람의 처분결과는 얼핏 들으면 잘 모르겠더군요.  

재판장께선 피고인에게 엄정, 단호, 동정, 인자, 차분함을 줄줄이 섞은 신비한 음성과 말투로 천천히 선고를 했는데, 우선 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잘 모르겠단 표정이었습니다.

이어서 가족들, ‘뭐시여? 나온다는 거여, 가둘 거라는 겨?’, ‘어쩌다 헌 실수라는 거여, 첨부터 나쁜 놈이니 매를 맞아야 한다는 거여?’라 웅성웅성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변호사는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 느끼며 맘속으로 고쳐지기를 바라는(개정을 촉구) 바가 있습니다. 도대체 법률용어는 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졌을까요?

여자 아나운서처럼 쉽고, 부드럽고, 발음과 어조가 정확하게 말하면 억울한 원고가 이기더라도 기분이 덜 좋고, 피고는 벌의 따끔함을 덜 느끼는 걸까요?

1958년에 처음 제정된 우리 민법은 그 이전인(1912~1959년까지)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의 일본민법전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합니다. 당연히 일본식 한자어가 어지러운 춤을 추고 있습니다.

혹시 ‘후폐’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한자로는 '朽廢'라고 씁니다. 이게 최고, 가료, 개서, 면탈, 사위, 궁박... 등처럼 법조계서는 흔히 등장하는 말이라는데, 어렵게 검색을 해서 알아냈습니다. 썩거나 아주 나빠져서 필요 없게 됨의 뜻이군요.

사람을 두고 “아무개는 지려천박 하여 후폐하다”라 하면 무척 몹쓸 말이 됩니다. ‘지적능력이 영 부족해서 이미 사람이랄 수도 없고 도대체 어디에 쓸 수도 없다’ 뭐 그런 말이 되니까요.

몇 해 전에 정부가 어려운 법률, 행정용어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고칠 것을 권했지만, 여전히 제곱미터 아닌 평을 쓰는 것처럼(아, 이건 규제 대상이죠!) 계속 난해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 버젓이 쓰이고 있습니다.    

거짓이나 속임수를 ‘사위’, 행위를 재촉하는 것을 ‘최고’, 고쳐 쓴다고 하면 될 것을 ‘개서’, 가난하고 어렵다 대신 ‘궁박’, 벗어나는 것을 ‘면탈’...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용어들, 금방 이해되지 않죠?

자, 지금 부터 할 이야기는 이건 정치 사안 따지는 거 아닙니다. 어차피 저는 제 편리할 대로 생각하는 회색분자인데다 이곳 '펀스피치 칼럼'에서 정치를 논할 만큼 식견과 지녀야 할 용기가 있지도 못합니다.

오늘 칼럼의 제목 '천의무봉'은 법무부 장관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나오더군요. 한자로 써야 아실 겁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본인 지시를 굽히거나 바꾸지 않으면서 ‘공정과 정의에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어야 합니다’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한 검찰총장께서는 대검을 통해 답변했습니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가 발생한다.’  

장관 “해!” 총장 “네!”  사실 이 말 아닌가요?

그런데 바느질 자국이 없는 하늘의 선녀 옷처럼 깔끔해야 한다(천의무봉)는 것과 명시적인 따따부따 하지 않고 지시를 수용한다는 것이 고심에 고심을 또 고심을 거듭하니 말이 그렇게 변했을까요? 명색 많은 글을 쓰고 읽는 작가인데다 상당한 학위(알량한 박사) 지녔다는 저도 ‘형성적 처분...’이 난생 처음 가본 동네 골목길처럼 어리둥절 생경했습니다.

지체 높은 나리들이 주고받은 말, 자세한 내용을 곧바로 알아들으신 분이라면 지금 바로 판, 검, 변호사 해도 충분할 겁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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