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사회에 여성 인물 내세워 후계 포석
김정은 건강 안 좋아...9·9절 무대는 다른 아이
[시사주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장에 딸 김주애(10)를 데리고 나왔다.
내외신들은 신형 ICBM 보다 딸에게 더 관심을 쏟으면서 김 위원장이 왜 딸을 데리고 나왔을까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첫째는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 여성 인물론 내세워 일찌감치 후계 구도에 공들이는 포석이다. 둘째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 보기보다는 안 좋다는 판단에 따라 백두혈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9·9절 정권 수립일에 무대에 나왔던 여자아이는 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대동했을 수도 있다.
◇ 핵이 곧 국체=백두혈통
북한 관영지 노동신문은 지난 20일자 1면에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를 표제로 김 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비서가 공화국 핵무력 강화에서 중대한 이정표로 되는 역사적 중요 전략무기시험발사장에 사랑하는 자제분과 함께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공개한 사진에는 하얀색 점퍼를 입은 김 총비서의 딸이 아버지 손을 잡고 발사 전 과정을 참관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괴물 ICBM’으로 불리는 화성-17형 앞에서 전혀 긴장한 모습 없이 밝은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자녀는 북한의 후계 및 권력구도와 직결되는 인물로, 북한은 과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권력 구도가 확정되기 전까지 자녀들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김 주석은 1942년생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에서 처음으로 공개했고, 김 국방위원장 역시 1984년생인 김 총비서를 2010년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번에 딸을 대동하고 ICBM 발사장에 나타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김 총비서 부부는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것으로 전해졌는데 구체적인 신상 명세나 이들의 출생 순서는 각종 ‘설’만 무성하고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이번에 공개된 딸이 ‘첫째’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역시 단언하기 어렵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직계 가족은 ‘백두혈통’으로 불린다. 또 북한은 백두혈통의 남성에게만 최고 권력을 이양해왔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딸이 김 총비서의 자리를 물려받기는 쉽지 않겠지만 후계 및 권력구도와 직결되는 ‘1호 가족’의 모습을 공개하는 데는 ‘선명한 정치적 이유’가 담겼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를 두고 김 총비서가 자신의 딸을 ‘국가 핵무력’의 위력을 과시하는 ICBM 시험발사장에 데리고 나온 이유는 북한이 최근 ‘핵이 곧 국체’라는 주장과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시 백두혈통으로 북한의 대외 사안을 총괄하는 김 총비서의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은 지난 8월 담화에서 핵을 ‘우리의 국체’라고 묘사했다.
이후 9월 9일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와 관련한 김 총비서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국체’의 의미는 보다 선명하게 표출됐다. 김 총비서가 당시 연설에서 “핵무력은 곧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고 영원한 존엄”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북한은 법제화한 핵무력 정책에서 “공화국 핵무력은 국무위원장(김정은)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거나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하며 ‘국체’의 결정권이 김 총비서에게 있음을 명시했다.
따라서 핵은 곧 국체라는 북한의 표현은 ‘핵이 백두혈통의 고유한 상징이며 권한’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국가핵무력’의 상징 중 하나로 여기는 ICBM, 그것도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파악되는 최고 성능의 ICBM 시험발사장에 김 총비서의 딸을 데리고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긴장되고 어려운 정세’ 하에서 최고지도자 일가가 모든 에너지를 쏟아 국력 강화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공개된 딸이 향후 권력의 중심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김 총비서가 딸을 공개한 것은 앞으로 국가핵전략무력 강화 노선을 꿋꿋이 이어갈 것임을 천명한 셈이다. 이미 김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당 중앙’의 핵심과, 궁극적으로는 국정의 핵심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게 하는 부분이다.
◇ 4대 세습은 딸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딸을 대동한 것은 향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리는 형식이라는 분석이다.
누이인 김여정 부부장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국가 지도자로 인정될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이다. 자신의 혈통을 내세워 고도로 가부장적인 체제에서 여성이 남성 중심의 지도부에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장벽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강력한 가부장적 문화에도 불구하고 왕비가 왕족을 통해 권력을 물려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혈통이 가부장제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위원장이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을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종종 북한의 미래에 대한 많은 추측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말 3주간의 부재는 그가 의료 시술을 받은 징후와 함께 결국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심각한 건강 문제에 대한 소문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6월 4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약 한 달 만에 부쩍 살이 빠진 모습으로 등장해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당시 의료계에선 당뇨합병증 혹은 이로 인해 수반되는 갑상선중독증에 걸리면 체중이 급감한다고 진단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28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비공개로 진행한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은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체중 관리를 잘해 (몸무게를) 많이 줄였다가 최근에 130~140㎏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됐지만, 현재 말투나 걸음걸이에서 건강 자체에 이상 징후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으로 지칭될 만큼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의 가족력에 어려서부터 담배와 술을 달고 살았다는 분석이 있고 보면 후계구도는 벌써 점화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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