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당 가는 것도 ‘반간첩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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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당 가는 것도 ‘반간첩죄’일까? 
  • 양승진 논설위원
  • 승인 2023.07.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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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의 한 북한식당에서 여종업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중국 단둥의 한 북한식당에서 여종업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시사주간 DB

[시사주간=양승진  논설위원] 2013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정부가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기자들을 초청했다. 기자들은 발해만의 대록도(大鹿島), 오룡배(五龍背) 온천, 천교구(天橋構) 삼림공원 등을 둘러봤다.  

한국 기자들을 초청한 단둥시 여유국 측은 “매달 6000여명의 한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지만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도시 정도로 알려져 아쉬움이 크다”면서 “잠깐 거치는 도시를 넘어 ‘단둥’만의 매력을 알릴 수 있도록 현재 온천·산림·해양을 중심으로 관광지를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둥시 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국 기자들에게 곳곳을 소개했지만 기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결국 기자들은 이럴 수는 없다며 주최 측에 프로그램 조정을 요청했다. “단둥까지 와서 북한을 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게 해주고 마지막은 시내에 머물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기자들은 일정 변경에 대한 비용은 갹출하겠다고 배수진까지 쳤다.  

주최 측은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롯이 단둥의 매력 있는 관광지만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역시나 한국 기자들은 일정 내내 북한 생각뿐이었다. 주최 측이 프로그램을 변경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자 기자들은 표정부터 달라졌다. 남은 일정에 그야말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기에 모든 것이 민첩해진 것은 물론이다. 

귀국해 단둥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예의 북·중 접경지역 압록강과 신의주 등을 소개하는 게 중심이었고 대록도, 오룡배 온천, 천교구 삼림공원 등은 본문 끄트머리에 살짝 걸치거나 소박스에 불과했다. 
     
사실 단둥 여유국 측은 스쳐 가는 도시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백두산 탐방 일정이 아무리 빠듯해도 압록강 단교에 오르거나 유람선은 꼭 탄다. 여기에 하룻밤 묶게 되면 북한식당을 찾는 것도 무조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북한식당 여종업원에게 고향이 어디냐, 몇 살이냐, 언제 귀국하느냐 하고는 슬며시 손에 팁을 쥐어주기도 한다.

이런 것도 이젠 다 옛날얘기가 됐다. 중국이 지난 1일부터 개정 ‘반(反)간첩법’을 시행하면서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모호한 반간첩법 규정 탓에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체포나 구금될 수 있으니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개정 반간첩법에 따르면 중국 공안당국은 간첩혐의가 의심되는 사람의 휴대물품 등을 강제수색할 수 있고 조사를 위해 8시간에서 최대 24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다. 또 반간첩법에 연루될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 입국이 제한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에 반간첩법을 개정하면서 새로 삽입된 ‘제3국 대상’ 간첩행위다. 중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나 주재원, 재중 교민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반간첩법 제4조6항은 ‘기타 간첩활동’을 규정한 조항으로 중국 경내에서, 혹은 중국인과 중국 내 조직을 이용한 제3국 대상 간첩행위 역시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 가운데는 북·중 접경인 백두산이나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 일대에서 북한을 향해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이제는 개정 반간첩법에 따라 중국 국적인 조선족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북한 땅을 향해 사진을 찍어도 ‘제3국(북한) 겨냥 간첩’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 여행 시 각지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북한 사정을 캐묻거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됐다. 개정 반간첩법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가 제3국(북한)을 겨냥한 ‘기타 간첩활동’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을 찾는 한국인들은 전부 반간첩죄로 체포돼 징역을 살거나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이고 보면 중국의 반간첩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SW

ys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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