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흙, 행복한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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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흙, 행복한 지구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4.03.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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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날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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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창조론(創造論)에 따르면 창조주가 흙으로 인간을 빚었고, 인간이 죽음에 이를 때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사이클이 수천년간 이어지고 있다. 현대인은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 바닥이 일상이므로 흙을 밟는 일이 매우 드물다. 흙은 빗물을 흡수한다. 우리의 식수(食水)가 되고 나무와 곡식이 자라고 지하수가 된다. 흙은 약, 화장품, 도자기 등으로 그 쓰임새가 무척이나 많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라이스대학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 교수는 인류에게 닥칠 다섯 가지 문제로 ‘에너지 물 식량 환경 빈곤’을 들며, 이 모든 것이 흙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문제 해결에 흙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안류 문명의 발달도 비옥한 토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흙의 중요성은 동서고금 곳곳에 나타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흙을 만물의 어머니라며 복룡간(伏龍肝) 등 여러 종류의 흙이 치료에 쓰이는 사례를 기록했다.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이 지은 과농소초(課農小抄)라는 농서(農書)에는 1척(尺) 깊이의 흙을 파서 맛을 봤을 때 단맛이 나면 상토(上土, 농사짓기에 썩 좋은 땅), 짜면 하토(下土, 농사짓기에 아주 나쁜 땅)라고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 무분별한 산림개발 등으로 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이미 세계 토양의 33%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며, 지금과 같은 토양 훼손이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전 세계 1인당 경작이 가능한 토지가 1960년 대비 1/4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흙은 지구 표면의 암석 부스러기와 동식물의 유기물이 섞여 생성되므로 토양이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한 번 훼손된 흙은 재생이 되기 매우 어렵다. 재생도 어렵지만 흙이 오염된 경우에는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에 비해 직접적인 피해를 즉시 확인하기도 어렵다. 이에 상당한 오염이 진행되고 그 피해가 심각해진 이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흙이 훼손되고 오염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노력과 국가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일상생할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즉 농약과 산성비료 사용 줄이기, 생활 쓰레기 배출 최소화, 자투리땅에 식물심기 등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대기오염이 토양오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도 흙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된다. 

‘흙의 날’은 흙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건강한 흙을 지켜가자는 취지로 2015년에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흙의 날이 3월 11일로 제정된 이유는 먼저 ‘3’은 3월은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달(月)로 하늘(天)+땅(土)+사람(人)의 3원과 농업·농촌·농민의 3농을 뜻한다. ‘11’은 흙을 의미하는 한자(土, 흙토)를 풀면 십(十)과 일(一)이기 때문이다. 

흙의 중요성은 세계적으로 확산하여 유엔(UN)은 2013년 정기총회에서 12월 5일을 ‘세계 흙(토양)의 날(World Soil Day)’로 제정했다. 또한 2015년을 ‘세계 흙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로 선언했다. 흙은 토양안보(soil security)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에는 ‘흙, 식량이 시작된 곳’이라는 슬로건을 선정하여 흙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제9회 대한민국 ‘흙의 날’ 기념식이 지난 3월 1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올해 기념식은 ‘건강한 흙, 행복한 지구’라는 주제로 열렸다. 농업과 농촌의 근간이자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흙을 건강하게 가꿈으로써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지구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다. 행사에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250여명이 참석했다. 

송미령 장관은 기념사에서 “흙은 우리가 살아가는 토대를 제공하고 물을 정화하며 농작물을 길러내고 탄소를 저장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농업의 환경 부담을 완화하고자 논물 관리, 바이오차(Biochar) 농경지 투입과 같은 저탄소 영농활동을 실천하는 농민에게 직불제를 지원하는 탄소중립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송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는 ‘건강한 흙, 행복한 지구’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토양에 꽂는 퍼포먼스(performance)를 펼쳤다. 한편 참석자들은 “우리는 흙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널리 알려 ‘흙 가꾸기’를 전 국민이 동참하는 환경보전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유한한 자원인 흙을 잘 보호하고 가꾸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흙의 날’ 기념식에 이어 ‘건강한 지구, 토양의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농촌진흥청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기후변화 시대의 토양관리 방안과 친환경농업 연구의 미래 등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발전방안이 논의됐다. 주제발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속가능한 토양관리를 위한 미래 연구방향(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전 세계에서 토양 위기가 주목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토양의 68%가 침식위험에 처했으며 유럽 토양의 25%가 사막화에 직면해 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토양에 관한 연구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토양 연구는 축소되고 있다. 연구 분야의 진보와 더불어 산업계와 학계의 동시다발적 협력이 필요하다. 

△ 토지관리를 위한 친환경농업 정책(김태연 단국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유기농업과 농업환경보전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 우선 공공급식 확대나 푸드테크 적용 등을 통해 친환경농가에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고, 관련 연구에 대한 지원도 해야 한다. EU의 경우 농업 연구 예산의 30%를 유기농업분야에 할당하고 있다. 환경보전에 이바지하는 농업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디지털 토양관리를 위한 현황과 전망(최대근 한국벤처농업대학 교수)=농업기업뿐만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고 있다. 농지에서도 첨단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에서는 농작물 운반 로봇이나 수확 로봇을 이미 활용하고 있다. 인건비 절약과 효율적인 농업을 위해서는 자율운행과 AI 등의 기술을 농업에 적용해야 한다. 

△재생유기농업, 지구를 지키는 사업(김광현 파타고니아 코리아 환경팀부장)=기업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흙과 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생유기농업은 농약·비료 등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방식으로 토양을 되살려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토양에 흡수되는 탄소량을 늘려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정부는 건강한 흙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함께 농업환경보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고자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을 지난 2019년부터 추진하여 현재까지 65개 마을에 지원했다. 다양한 환경보전 활동을 추진한 결과, 생물다양성 등급이 오르고 저수지 총질소 수치가 5년 새 83%나 감소하는 성과도 나타났다. 또한 친환경농업도 해당 마을에서 확산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근간인 흙은 삶의 토대를 제공하고 먹고 쓰는 물을 정화하고 식물을 길러낸다. 이러한 전통적 흙 역할 외에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炭素)를 저장해 기후변화를 막아내는 생태적 가치도 조명을 받고 있다. 흙이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가치인 이유다. 

토양에는 약 2조5천억톤의 탄소가 저장돼 있으며, 영구 동토층 툰드라(tundra)에도 1조6천억톤에 가까운 탄소가 저장돼 있다.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량이 7500억톤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5.5배에 해당하는 탄소가 땅속에 있다. 그러나 토양이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은 토양 상태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즉 유기물과 미생물을 많이 함유한 ‘건강한 흙’은 탄소격리 능력이 높지만, ‘오염된 흙’은 그 능력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먹거리 공급은 국민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는 건강한 흙을 비롯한 농업 환경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2018년도 농촌진흥청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농경지는 한 해 동안 팔당댐 16개 크기의 물을 저장하고, 지리산 국립공원 171개의 이산화탄소 흡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환산한 흙의 공익적 가치는 양분공급 179조 8천억원, 자원순환 79조 1천억원, 식량생산 10조 5천억원 등 281조원에 달한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먹거리 공급은 건강한 흙을 비롯한 농업환경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건강한 흙을 지키는 최전선에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흙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면서, 미래로 물려줘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삶의 기반인 ‘건강한 흙’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흙이 베풀어 주는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도 흙 위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야말로 흙은 모든 생물을 길러주는 ‘생명의 어머니’다. ‘흙의 날’을 계기로 우리 국민이 자연과 흙의 가치를 되새기며 농업환경보전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고, 미래세대에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길을 다지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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