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피해 예술인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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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피해 예술인 무시?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1.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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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명단 송부, 진행 상황 보고 '의무없는 일' 여부 개별 판단해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자체가 범죄, 실행 공무원에 면죄부 주는 격"
"고통받은 예술인 전혀 생각하지 않고 법리적, 형식적 판단내려"
지난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대법원이 지난 30일, 박근혜 정부 당시 특정 문화예술인들의 지원 등을 배제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직권남용'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파기환송의 이유였고 이 범위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고가는 가운데 문화계는 '블랙리스트로 핍박받았던 예술인들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렸다.

대법원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속 직원들에게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고, 위원회에 속한 위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령에서 정한 직무범위를 벗어나거나, 법령에서 정한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게 한 부분에 대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유죄 판단에는 잘못이 없지만,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행위 부분에 대해서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유죄 판단에는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일정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인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그가 직권에 대응하여 어떠한 일을 한 것이 '의무 없는 일'인지 여부는 관계 법령 등의 내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을 위해 공무원들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게 하고, 사업 과정에서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하는 것은 '의무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기에 법령 위반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종전에도 문체부에 명단을 송부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한 사례가 있었는지.,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그에 맞춰 판결을 다시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공무원들은 관련 근거에 따라 '상부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아낼 가능성이 생긴다.  문화인들은 예술인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맡았던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며 이는 '블랙리스트' 자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거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부장을 맡은 한 공무원은 블랙리스트 수사 당시 "블랙리스트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린 사람을 만나 왜 말이 안 되는 지 설명하고 싶었다"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공무원은 지난 2015년, 당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던 박근형 연극연출가가 창작산실 시범공연에 지원하자 '취소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없어진다'며 포기각서를 강요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 보고서를 통해 검열 계획 및 집행을 이끈 송수근 전 문체부 1차관은 지난해 8월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며 문화예술계 현장으로 돌아왔다. 문화연대 등 단체들과 대학교 학생회들은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2차 가해를 중단하라'며 지난 28일 '송수근 총장 퇴진을 위한 공동행동'을 출범시켰다.

이처럼 블랙리스트 실행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다시 현장에 복귀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의무없는 일'을 거론하며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에 대해 문화계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예술인들이 받은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형식적인 법리만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관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은 "문체부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를 시행한 것을 직권남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일을 한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전혀 한 적이 없고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것, 그 자체가 범죄인데 이를 그냥 유야무야 넘기겠다는 것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윤희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위원장은 "2심에서는 정치적 성향, 비판적 활동을 이유로 지원을 배제하기 위해 명단을 송부하도록 하는 지시는 전체적으로 위헌, 위법에 해당되고 명단 송부는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직권남용죄가 성립된다고 했는데 그걸 대법원에서 '법리오해'로 보고 파기환송했다. 명단을 제출하고 과정을 보고했다는 것은 예술인들의 개인 정보를 주는 것이고 사찰을 했다는 것인데 이를 '관행'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블랙리스트 문제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자체가 범죄고 그 블랙리스트로 많은 예술인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형식적이고 법리적인 판단만 내렸다. 블랙리스트가 '완전 무죄'라는 소수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께서 '국정과제 1호'로 약속한 만큼 국가와 대통령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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