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한 정부안, 기로에 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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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한 정부안, 기로에 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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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유예 대상 확대, 처벌 및 손해배상 낮추는 등 '기업 위주'
'인과관계 추정' 삭제, '동시에 2명 이상 사망' 규정 등 문제
'사실상 법안 유명무실' 비판 제기, 강은미 "유족들 두 번 죽였다"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故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왼쪽부터). 사진=뉴시스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故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왼쪽부터).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28일 정부가 내놓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이 본래의 취지와는 어긋난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적용 유예 대상을 늘리고 책임자 처벌 및 손해배상액을 낮추는 등 원안과 다른, 경영계의 입장을 반영한 내용으로 수정안이 나오면서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가 완전히 후퇴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특히 이 법의 통과를 위해 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20일 가까이 단식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기업의 책임과 처벌을 감면한 법안을 내놓은 것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와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안은 먼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유예 대상을 확대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4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있지만 정부안은 여기에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2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것을 추가해 유예 범위를 확대했다.

또 기업에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할 경우 '5억원 이상'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발의안과는 달리 정부안은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바꿔 벌금의 하한선을 큰 폭으로 낮추었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강은미 정의당 의원 발의안), '5배 이상'(박주민 의원 발의안)이 아닌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로 한정해 배상액 역시 크게  낮추었다.

여기에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더라도 추정을 통해 경영자와 원청에 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인과관계 추정'은 수정안에서 완전히 삭제됐다. 발의안에는 △사고 이전 5년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또는 관련 행정청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 진상조사. 수사 등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되거나 이 행위를 지시 및 방조한 경우 등에 대해 인과관계 추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내용에 대해 '무죄 추정 원칙 위반', '위헌 소지' 등의 반론이 제기되면서 법안의 핵심 쟁점이 됐고 결국 정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삭제했다. 또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영책임자'의 범위에서 중앙행정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을 제외시키고 공공기관장, 지방공기업의 장으로 국한시켰다. 이 내용은 중대재해의 책임을 공무원을 넘어 지자체장, 대통령에게도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내용의 정부안이 발표되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종철 대표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5%가 일어나는데 이런 사업장에 적용을 4년 유예하는 것도 모자라 50~99인 사업장까지 2년 유예를 가져왔다. 원청책임도 약화, 처벌도 완화, 징벌적 손해배상도 약화"라면서 "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산업재해가 줄지 않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자 했더니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29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중대재해가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 시스템 미비로 일어나는 기업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한 법안인데 주요 내용이 다 빠져버렸다. 이런 식으로 원청의 책임을 계속 벗어날 수 있게 하나씩 줄여주면 현재의 산업안전법과 그리 다를 게 없는 법안이 된다. 기업 처벌을 모사는 정부안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안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처벌을 줄인 것은 물론 처벌 가능한 재해의 기준을 줄여 사실상 기업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중대재해를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으로 규정한 내용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故 김용균씨, 구의역 김군 등의 사건은 중대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처벌도 면하게 된다. 현재의 산업안전법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비판받은 것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50인 미만, 100명 이하의 기업을 대상으로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중대재해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소형 사업장에 유예를 주는 것은 법안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월 파쇄기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故 김재순씨가 근무한 광주의 한 폐기물 업체는 2014년에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전력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정부안대로라면 유예기간에 포함되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정의당 노동본부는 29일 성명에서 "중대재해 85%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그런 중소기업 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98.8%, 추락사 등 건설업 사고 84%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정부 통계에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0인 이하 사업장의 유예를 추가하자는 것은 아예 법 제정의 효력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며 재벌들의 요구에 맞장구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경영책임자를 '안전보건 담당 이사'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방패막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며 원청책임의 의무를 '시설, 설비 등 소유 관리할 때로만 제한' 한 것 역시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법의 취지와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기업에 대한 패널티를 줄임으로써 사실상 법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단식 농성 중인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29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수많은 목소리는 뒤로 하고 재계의 이해관계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오늘로 19일째 곡기를 끊고 차디찬 국회 노숙 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저와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식 농성까지 하며 통과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있지만 현 정부안대로 통과된다면 법안 통과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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