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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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4.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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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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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미국서 나고 자란 소년 윌리는 부모가 한국계이어서 우리말 10% 정도는 말하고 알아듣습니다. 한국에 온 윌리가 제 서재를 구경 중 장식품 하나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 “저걸 내게 파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나 “아니! 저건 파는 게 아니란다.”
그 “그럼 돈을 받지 말고 주시면 고맙겠어요.”
나 “아, 그건 안 돼. 다음에 꼭 주마. 다음에!!”

10여 해 전 일이니 윌리와 저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상당한 기간의 ‘다음’이 있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 ‘다음’이란 표시로 정중하면서도 충분하게 거절했으니 뺏기지 않게 됐다고 안도했는데, 그의 0.1초도 안 된 반응은 이랬습니다. “오, 굉장히 땡큐! 다음이라 했으니 지금 약속해요. 전 한국에 O일까지 있게 돼요.”

새삼 또 짚어본 대로 우리말 ‘다음’은 싫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완곡해지려면 이렇게 바뀝니다. “추석 지나고”, “설 지나고” 허나 이 역시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대명절이 두 개 뿐이어서 거절이나 막연한 연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릴 괴롭히고 있는 끔찍한 역병 코로나가 1년도 훨씬 지났는데, 아직 버티면서 개개인들 약속이나 활동에 큰 제약을 주고 있습니다. 행사는 취소보단 무기연기가 많습니다. 칼처럼 자르지 못하는 우리네 성정 때문이죠.

그런데, 마스크 쓰고 만나는 1대1 대면도 생략하거나 마냥 미뤄야할까요? 육지서 쾌속정으로 가도 2,3시간 거리 무인도, 거기서 혼자 토굴 파고 들어가 방독면 쓰고 있으면 전염병 위험은 없겠지만요, 이건 뭐 로빈슨 크루소도 아니고... 코로나에 익숙해진 이젠 방역수칙 지키며 제한적으로나마 일상생활을 해야지 않을까요?

새 유행어 ‘코로나 잠잠해지면...’라는 말은 2가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진짜 바이러스 감염 조심이고, 다른 하나는 ‘설 이후’나 ‘추석 쇠고’ 처럼 좀 얼핏 공감이 들게도 하는 부드럽지만 결국 거절 의미가 강합니다.  

미국 소년 윌리의 다음은 그때 이후의 어느 확실한 시간이지만, 우리의 다음은 거개가 영원히 오지 않는 불분명한 미래입니다.

딱 부러진 거절보단 다음이 낫지 않느냐구요? 여지를 남기는 뜻도 있다는 거 인정합니다만, 이게 통하니 의미도 없고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마음 표현할 때 이 말을 남발한다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 하죠. 무심코 던진 작은 말 하나가 듣는 쪽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요즘 자영업자들 어려움 얼마나 큽니까?
내심 와줬으면, 물건을 사줬으면 하는 맘 역력한데, 차라리 ‘당장은 어렵겠다’고 해버리면 잠깐만 섭섭하고 말지만, 쉽게 끝날 거 아니라는 거 잘 아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이러면, 성의라고는 0.01도 없는 매정한 뿌리침으로 들려 야속해진다니까요.

윤동주 시인이 지금 살아있다면 분명히 ‘내일은 없다’라는 시 대신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시간은 없다’라고 썼을지 모릅니다. 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 자고 동틀 때가 내일이라고,
새날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오늘이더라
동무들아 내일은 없나니...(오늘 만나자??)...>

코로나19 방역수칙 무시하고 만나서 법석대자, 이건 아닙니다. 그저 새롭게 입에 올리는 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만은 뚝!! 뻔한 이야기 해봤자 아닌가요?!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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