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마르코스, "행동으로 평가해달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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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마르코스, "행동으로 평가해달라"고 해도...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2.05.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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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된 마르코스 주니어. 사진=AP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된 마르코스 주니어. 사진=AP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1986년, 21년간의 독재 끝에 필리핀 국민들의 '피플 파워'에 밀려 필리핀을 떠나야했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그러나 그로부터 36년 뒤 그의 아들이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다. 당시 마르코스의 부인으로 사치를 일삼으며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던 이멜다 여사는 대통령의 어머니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필리핀 대선에서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64) 상원의원이 무려 84.39%의 득표율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부통령은 대선 출마설이 계속해서 나왔던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다바오(43) 시장이었다. 한마디로 과거의 마르코스와 현재의 두테르테가 만나 정권을 잡은 것이다. 반면 두테르테에 맞서겠다며 대통령에 출마했던 프로복서 매니 파퀴아오는 361만표를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마르코스의 승리 요인은 이른바 '마르코스의 독재를 겪지 못한' 청년들을 노린 점이 주효했다. 그는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마르코스 시대가 '황금시대'였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마르코스 집권 기간 동안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했다'고 주장했고 과거 국제엠네스티가 마르코스 시절 보안군의 성적 학대 등 인권 유린을 발표한 것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는 등 마르코스 독재 지우기와 찬양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여기에 그는 지난 3월 '한 지방에서 유세를 하려했지만 무시당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유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각종 인터뷰나 질문을 무시하는 등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측은 필리핀의 전성기가 마르코스 때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마르코스가 집권한 20여년간 필리핀의 국내총생산이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인권 유린은 국제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으며 이멜다 여사가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00억 달러에 대한 환수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과 더불어 하원의원, 내각 등이 친 마르코스 인사들로 채워질 것으로 보이면서 이 노력들이 모두 무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일각에서는 친 마르코스 인사의 등장이 '민주주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필리핀 민주주의는 실패했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마르코스 주니어는 "선조(마르코스)가 아닌 행동으로 평가해달라"면서 "모든 필리핀인을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필리핀의 인권단체 카라파탄이 '대선 불복 운동' 전개를 선언했고 대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마르코스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집회를 여는 등 벌써부터 반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SNS를 통한 '가짜 뉴스' 작전, 필리핀의 전통적인 '왕조 정치', 여기에 민주화 이후 국민들의 피로감 등이 마르코스를 다시 부른 이유로 지목되는 가운데 필리핀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도 지켜볼 만 하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선 축하 전문을 통해 "좋은 업무 관계를 맺기 바란다"면서 협력 증진에 대한 기대를 나타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군사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을 의식해 역시 "동맹 관계를 강화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베니그노 아키노의 급작스런 암살로 촉발된 민주화의 열망이 독재자를 쓰러뜨렸지만 민주화의 피로감을 이유로 다시 독재자의 유산을 불러들이는 모습은 마치 몇 년 전, 아니 현 시점의 우리나라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마르코스를 받아들이고 두테르테를 이어받은 필리핀의 앞날은 말 그대로 안갯속이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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