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kg 컨테이너에 깔린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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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kg 컨테이너에 깔린 청춘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1.05.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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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사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지난 6일 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사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청년들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또 한 명의 청년이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지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이선호(23)씨이었다.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부두에서 선재물 정리작업을 하던 중 변을 당한 것이다.

이선호씨는 평택항 하역장에서 동식물 검역 및 하역 등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으로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을 맡은 업체가 다시 인력 위탁을 맡긴 인력업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인력이 통폐합되면서 다른 작업을 하게 되었고 사망 당일 이씨가 한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 해체 작업은 그날 처음 맡은 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청의 요청으로 진행된 작업을 하던 도중 이씨 쪽의 컨테이너 날개가 접히면서 컨테이너가 이씨를 덮친 것이다.

그리고 사고 후에 알려진 것은 이씨가 처음 업무에 투입되었음에도 사전 안전 교육이 전혀 없었고 컨테이너가 넘어갈 정도로 구조물이 불량했다는 것이다. 또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119 신고를 먼저한 것이 아니라 사내 보고가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려졌다. 사망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 지게차 수신호 담당자 등도 없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원청도 하청업체도 서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아버지는 분노하고 있다. 아버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전모도 없이 일을 하다가 아들이 떠났다. 회사는 사과는 커녕 업무 지시도 한 적 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나도 8년째 이 곳에서 일을 했지만 누구도 안전모를 쓰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안전관리 인력, 지게차 신호수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며 아들의 죽음이 원청에 책임이 있는, 명백한 '산재사고'임을 분명히 했다. 아들이 죽은 지 보름이 되었음에도 회사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장례는 치르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죽음 이후 대책위가 구성이 됐고 대책위는 조속한 원인 구명과 안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 역시 "항만공사와 해수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고용노동부도 항만 노동현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근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사고 전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한다.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하고 기업도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평했다.

김용균씨의 사망에도, '구의역 김군'의 사망에도 늘 이 말들이 따라다녔다.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에 책임을 지우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켜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산재를 일으킨 기업에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중대재해처벌기업법'도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등 예외조항을 만들며 기업의 책임을 줄였고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서도 하청에서도 책임져주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인양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글이 나온 지 11년이 됐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최근 이씨의 누나가 이씨와 관련된 청원을 독려하는 글에 남긴 댓글에 따르면 이씨는 군 복무 후 스스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사고 당일에도 시험공부를 위해 노트북과 책을 챙겨갔고 조카들이 보고 싶어 영상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장애 2급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큰누나가 있었고 그 큰누나를 옆에서 잘 챙겨주고 아꼈다고 한다. 그 청년이 기업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희생된 것이다.

지난 보궐선거 이후 20대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려는 정당들의 힘겨루기가 펼쳐졌지만 정작 힘겹게 일하면서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게 지금의 정치권이다. 이미 상처를 입을대로 입은 20대들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넣는 행태도 곳곳에서 보인다. 20대를 열악한 노동환경에 밀어넣고 목숨을 위협받게 만드는 지금, 진정으로 상처를 치료할 이들이 없다는 것이 청년들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비극이기도 하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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