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안장 논란, '청산하지 못한 70년'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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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안장 논란, '청산하지 못한 70년'의 결과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0.07.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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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백선엽 예비역 장군. 사진=뉴시스
故 백선엽 예비역 장군.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전쟁영웅과 친일파, 양극의 삶을 살며 논란의 중심이 됐던 백선엽 예비역 장군이 지난 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일제 시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서며 일본에 충성했고 광복 후 친일 행위로 인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월남한 뒤 빨치산 토벌로 '반공'에 앞장섰으며 6.25 전쟁 당시 가장 먼저 평양을 탈환하고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전공을 거두며 '전쟁영웅'의 칭호를 얻은 그의 한 세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백선엽은 1941년 만주군관학교 9기로 졸업한 뒤 '간도특설대'의 조선인 부대에서 3년간 근무한다. 이 부대는 1938년 창설 직후 만주지역의 항일무장 독립군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곳이다. 그는 1944~1945년 간도특설대원으로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에 참여해 중국군 팔로군을 토벌했는데 당시 팔로군에는 조선인도 포함이 되어 있었고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서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친일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그는 빨치산 토벌 당시 민간인의 집들에 불을 지르는 등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준 것 때문에 "한국전쟁의 공은 희생된 양민들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남로당 총책으로 지목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구명했고, 뒷날 박정희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을 맡는 등 권력을 누리면서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들보다 더 잘산다'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그의 공도 분명 있었다. 특히 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으로부터 낙동강과 대구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며 북한군의 세력을 꺾었고 중공군으로부터 동부전선을 지켜내는 등 우리나라를 지켜낸 전공을 가지고 있다. 한때 한국군을 무시했던 미군의 평가가 달라지고 한국군을 동맹군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백선엽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생애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시선이 크게 충돌했다. 보수는 북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점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반면 진보에서는 그의 독립군 토벌 전력과 기회주의적 행동을 이유로 심판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의 사망과 현충원 안장을 놓고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그의 사망 후 보훈처는 대전국립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설을 이 시대는 지우려한다"고 밝혔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백 장군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냐. '친일'이라며 백 장군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좌파들의 준동이 우리 시대 대세가 되 버렸다"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 정의당은 "한국 전쟁 당시 일부 공이 있다는 이유로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일제의 주구로 독립군을 토벌한 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앞서가신 독립운동가들을 무슨 낯으로 볼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친일행위자 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부당한 우대를 중단하고 역사의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한다"고 밝혔다.

특히나 그의 죽음이 공교롭게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면서 보수층에서 박원순 시장에 대한 반발로 '백선엽 추모'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군인권센터와 몇몇 네티즌들은 "백선엽을 야스쿠니 신사로 보내야한다"는 입장을 전하며 비판하고 있다.

최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 인사들의 묘를 파묘해야한다는 '친일 행위자 파묘법'이 국회에 발의되며 친일의 흔적을 없애려는 노력이 보여지고 있지만 백선엽 안장 논란은 친일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 왜 아직도 어려운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어려운 삶과 대조되는 친일파 후손들의 화려한 삶을 지켜봐왔던 이들에게는 일제 때는 일본에 충성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국과 정부에 충성하고,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이가 '반공 인사'로 돌아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묵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후손들이 계속 논쟁을 벌여야하는 상황. 역사의 부끄러움을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렇게 다시 드러났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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