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통일 진나라의 인재 포용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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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 진나라의 인재 포용정책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2.08.24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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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NTD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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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가장 중요한 요인을 꼽으라면 인재를 포용하는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李斯) 역시 초나라에서 건너왔다.

그러나 후일 진시황이 되는 진왕이 포용정책을 펴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사는 처음에는 진왕에게 실망하고 다른 나라로 가려고 마음 먹었을 정도로 진왕은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진왕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종실이었다. 위양군을 중심으로 한 종실 세력은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 되자 타국 출신 관료들을 쫒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대표적 케이스가 ‘축객령(逐客令)’이다. 후세 사학자들은 축객령의 계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조나라 출신 상인으로 승상이라는 자리를 꿰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 문제다. 그는 태후를 조종하기 위해 가짜 환관 노애를 태후에게 상납했고 태후는 아이까지 낳았다. 노애는 이 아이를 왕으로 만들겠다며 반란을 일으키기 까지 했다.

또 하나는 한나라가 보낸 토목 전문가인 정국의 이야기다. 정국은 진왕을 꼬드겨 각지에 운하를 건설하도록 했는데 이는 진나라의 재정을 악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이 생기자 권력에서 소외됐던 진 나라 종실을 중심으로 외국인을 추방하자는 주장이 일어났으며 진왕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이사가 나서서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를 올려 진왕의 마음을 돌렸다.주 내용은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찾아 서쪽 오랑캐 땅에서 유여를 데려오고 초나라에서 소를 키우던 백리해를 맞이하였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등용하고 진(晋)나라로부터는 비표와 공손지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들 다섯 사람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목공께서는 그들을 중용함으로써 패자가 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효공께선 상앙(위(衛)나라 출신)의 신법을 채택하시어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혜왕께선 장의(위(魏)나라 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여섯 나라의 합종(合縱)을 깨뜨리고 진나라를 섬기게 만드셨습니다. 소왕께서는 범저(위(魏)나라 출신)를 등용해 진나라 왕실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고, 공족과 대신들의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중략)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왕은 어떠한 백성도 뿌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가 있습니다. 군주다운 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은 내 나라 네 나라의 구분이 없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인재등용이 법률 전문가들에 치우쳐 있다고 한다. 때마침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취임 100일 넘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평가하며 “검찰 출신을 너무 많이 쓴다, 아는 사람들 위주로 쓴다는 것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생 그 분야에서 일해 왔기에 당연한 일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대통령이 평생 일해 왔던 분야의 사람들이 주로 포진한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거의 매일 야당이나 반대세력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다. 시중에는 인재가 없다는 말이 나돈다. 그러나 어쨌든 찾아야 한다. 좀 더 넓게 크게 눈을 뜨고 다양한 인재를 발굴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인재 발굴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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