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살리기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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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살리기 대작전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3.06.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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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Bee)과 나방(Moth)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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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벌(bee)은 지구상 가장 바쁜 생물중의 하나다. 한 마리의 꿀벌은 하루에 무려 7,000개의 꽃을 넘나든다. 벌은 꿀과 로얄제리(Royal Jelly), 꽃가루 등 고급 식품과 꿀벌왁스, 프로폴리스(Propolis) 등 부산물인 건강식품도 생산한다. 벌들의 가장 큰 공로는 세계 식량 중 90%를 생산하는 식물의 3/4의 꽃가루 매개를 담당하는 것이다. 이에 세계 식량 생산의 1/3이 벌에 달려 있다. 

나방(moth)은 곤충강(綱) 나비목(目)에 속하는 종류 중 나비류를 제외한 나방류의 총칭이다. 나방은 약 18만종이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크기는 보통 40-50mm 종류가 많다. 나방은 해질 무렵이나 밤에 활동하며, 꽃꿀·과즙·나무즙액 등의 액을 빨아먹고 산다. 영국 셰필드대(University of Sheffield) 연구팀은 나방이 식물 수분(受粉)의 3분의 1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필자는 꿀(honey)을 즐겨 먹고 있다. 몇 년 전에 뉴질랜드(New Zealand)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을 당시 일정 중에 마누카꿀 농장 방문이 있어 농장에서 마누카 꿀(Manuka Honey) 2병을 구입했다. 요즘은 코스트코(Costco Wholesale Corporation)에서 수입한 마누카꿀(UMF 10+)을 구입(500g 5만원)해서 먹고 있다. 아침에 공복 상태에서 꿀을 티스푼으로 한 스푼을 물과 함께 먹고, 저녁에 취침 전에도 꿀 한 스푼을 먹는다. 

뉴질랜드에서 양봉업자로 등록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마누카 꿀’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에 ‘마누카 꿀’이라는 라벨(label)을 붙이려면 벌꿀의 성분이 정부(1차산업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마누카 꿀은 고농축된 항균 화합물인 메틸글리옥살(MGO)로 인해 다른 유형의 꿀과 다르다. 정부는 이런 성분을 분석해 마누카 꿀의 효능을 평가하는 척도를 관리하고 있다. 이를 마누카 고유효능요소(UMF·Unique Manuka Factor)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UMF 5+’ 등급부터 마누카 꿀로 인정한다. 수치가 오를수록 약리작용이 강하다고 판단돼 더 높은 가격을 쳐준다. 마누카 꿀은 상하지 않지만, 2년여의 숙성기간을 거치면 그 효능이 극대화되다가 특정 시점이 지나면 이 수치가 감소한다. 검증을 마치면 출하되는 제품에 UMF 등급 수치와 함께 품질유지 기한이 명시된다. 

뉴질랜드는 양봉(養蜂)강국이다. ‘액체로 된 황금’(liquid gold)으로 불리는 ‘마누카 꿀’이 세계 벌꿀 시장을 제패한 배경에는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 뉴질랜드 정부와 양봉업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 세계 양봉시장 규모는 연평균 3.6%씩 성장하며, 2026년에 11억8천만달러(약 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탁월한 면역증진 효능을 가진 마누카 꿀은 3m 높이의 뉴질랜드 자생관목 마누카 나무의 꽃에서만 채집할 수 있어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다. 연평균 2만톤의 천연꿀을 생산하는 뉴질랜드는 매년 3억4천만달러를 기록하며, 천연꿀 수출액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국내 양봉업계는 침체를 거듭하여 지난 5년간 국산 천연꿀 수출량은 90% 이상 감소했다. 뉴질랜드 양봉농가는 1만509호로 국내 양봉농가(2만7464호)의 절반도 안된다. 

국제연합(UN)은 전 세계에서 벌이 급속하게 죽어가는 현상에 대한 경고와 함께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했다. 세계 벌의 날은 UN이 2017년 전 세계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2023년 ‘세계 벌의 날’은 “꽃가루 매개자 친화적인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벌”(Bee engaged in pollinator-friendly agricultural production)이라는 주제 아래 꽃가루 매개자 친화적인 농업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특히 근거 기반 농업 생산 실천을 통해 벌과 다른 꽃가루 매개체를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념일이 매년 5월 20일로 된 것은 현대 양봉 산업의 선구자인 발칸(Balkan)반도 슬로베니아(Slavenia)의 안톤 얀사(Anton Jansa)의 출생일에서 따온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유럽 양봉의 심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이다. 인구 200만 슬로베니아에 양봉 인구가 1만명이나 있다. 자연스레 슬로베니아 국가와 양봉인 안톤 얀사는 ‘벌이 좋아하는 꽃 많이 심기 운동’에 앞장섰다. 

‘세계 벌의 날’ 지정 이유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수분(受粉)이란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을 말한다. 만약 꿀벌이 멸종된다면 인류는 생태계의 파괴와 식량 위기에 따른 영양실조를 겪게 될 수 있다. 이에 주변 환경에 민감한 꿀벌은 환경 지표종으로 꿀벌이 활발하게 서식하는 곳은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역으로 여긴다. 

2016년 ‘종 다양과 생태계 서비스 세계 과학정책플랫폼’은 벌 등 꽃가루 매개체에 대한 세계 식량생산 의존도가 5천800억 달러가 된다고 분석했다. 벌은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며, 벌은 꽃가루 매개를 통해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고 유지시키며 생물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벌의 건강상태와 벌의 개체 수 증감을 관찰하면 환경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세계 벌의 날’을 기념하여 세계 각국은 꿀벌을 보호하는 활동은 물론 그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2023년 ‘세계 벌의 날’을 기념해 꽃가루를 모으고 꿀을 저장하는 꿀벌과 벌집을 담을 기념우표를 제작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식물의 번식과 농작물 생산에 공을 세우고 있는 ‘꿀벌’의 활동을 기리는 우표 64만장을 발행했다. 

인천 송도센트럴파크 테라스 정원에서 포스코(POSCO)이앤씨, 어반비즈서울, 건국대 산업협력단, 인천시설공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함께 ‘해피 비즈 데이(Happy Bees Day)’ 행사를 진행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도시 양봉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에서 꿀벌 관련 체험 프로그램과 다채로운 환경 관련 공연, 경품 이벤트 등이 진행되어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도시 양봉(養蜂)을 장려하는 사회적 기업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이 세계 벌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어반비즈서울(대표 박진)은 ‘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 아래 2013년부터 도시양봉을 시작하여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만 양봉장 25곳을 운영하고 있다. 벌통에는 여왕벌 한 마리와 2-3만마리의 벌들이 있으며, 한 통에서 꿀 10kg이 나온다. 

KB금융그룹(회장 윤종규)은 밀원(蜜源)숲 조성 및 도시 양봉을 통해 꿀벌의 생태계 회복을 위한 ‘K-Be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의도 KB국민은행 본관 옥상 양봉장에 이어 약 12만 마리 규모의 두 번째 도시양봉장을 서울숲에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양봉장이 생기면 벌은 반경 2km를 날아다니며 꽃을 잘 피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식물 대부분이 벌, 나비, 새, 바람 등을 이용해서 자연적으로 수분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부터 늘어나는 인구에 맞춰 경작지가 확대되면서 벌통을 가지고 농가를 방문해서 작물의 수분을 매개해 주는 양봉가들이 등장했다. 양봉업자들이 밭에 벌을 풀어 놓으면 벌은 돌아다니면서 꽃의 꿀을 빨고 화분을 날라 곡식의 수분을 이룬 뒤에 다시 벌통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2006년에 갑자기 미국 곳곳에서 풀어 놓은 벌의 60% 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런 벌 집단 폐사를 두고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에 과학자, 양봉가, 농부들은 CCD의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무려 61가지의 스트레스 요인들과 질병 유발 요인들이 지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에 꿀벌 78억 마리가, 지난해는 100억 마리가 폐사했다. 

양봉가와 농부들은 주로 작물에 뿌린 다양한 살충제(殺蟲劑)가 벌의 건강을 악화시켜서 폐사를 낳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충제를 만든 회사는 이미 독성 실험 후에 시판된 제품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독성학(毒性學)을 전공하는 과학자들도 실험을 통해 살충제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양봉가와 농부들은 과학자들의 실험이 넓은 지역에서 100가지가 넘는 살충제에 접촉하고 이를 몸에 묻혀서 벌통으로 돌아오는 벌의 현장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기 못했다고 비판했다. 

꿀벌은 축산법(畜産法)상 가축인데, 이는 양봉업(養蜂業)관리 때문이다. 곤충산업의 총아는 양봉이며, 양봉은 꿀 채취와 더불어 농업 자체로도 중요하다. 꽃가루를 나르는 벌이 채취하여 조직적으로 저장한 꿀을 인간이 사용한 역사는 기원전부터다. 꿀벌은 꽃과의 거리를 인지하며, 붕붕거리는 몸짓을 통해 소통한다. 벌은 태양의 방향이 1시간에 15도씩 서진하는 것까지 반영해서 알려준다. 

국내 꿀벌의 상당수는 수입양봉으로 토종한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재래종 꿀벌의 90%가 낭충봉아부패병(sacbrood,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폐사했다. 여타 곤충들이 꽃가루받이를 수행하고 있고, 서양 벌만으로도 꽃가루받이가 문제없다고 한다. 그러나 토종벌과 서양벌은 채취하는 꽃이 다르다. 예를 들면, 많은 야생화(野生花)는 서양벌에는 적당하지 않아 토종벌이 필요하다. 

같은 꿀벌이 자연에서 채취한 4가지 양봉산물(꿀, 로얄젤리, 프로폴리스, 화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양 성분 및 조성은 아주 다를 수 있다. 더욱이 같은 양봉산물이라 하더라도 생산지 또는 채취시기에 따라 그 조성 성분의 차이가 생긴다. 이는 꿀벌이 비행하는 지역의 환경과 동선, 채취하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벌꿀의 성분 및 효능은 비타민, 단백질, 미네랄 등의 이상적인 종합영양성분 이외에 설탕과 같은 감미료와 달리 효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연식품이다. 포도당과 과당은 물론 장에 유익균 증식을 위한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성분인 올리고당, 자당, 맥아당 그리고 아미노산 17종, 비타민 10종, 미네랄 12종 및 소량의 유기산을 함유하고 있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꿀벌의 수명이 절반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 살충제, 해충과 질병 등이 지목되고 있다. 이에 과학자들이 꿀벌 살리기에 나섰다. 호주 커틴대 연구진은 벌들이 선호하는 꽃 10종을 찾았으며, 모두 토착 식물이다. 미국 바이오 기업(달란 애니멀 헬스)은 세계 최초로 꿀벌 유충을 썩게 하는 부저병(腐蛆病)을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했다.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은 꿀벌에게 해를 끼치는 바로아응애(Varroa mite)와 작은벌집 딱정벌레만 죽이는 살충제를 개발했다. 

오늘날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인간의 무분별한 농약 사용은 꿀벌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양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므로 도시양봉에 관한 법령이나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4년 뒤에 사라진다”는 섬뜩한 경고가 있으므로 이를 명심해야 한다. 벌이 건강한 생태계(生態系, ecosystem)의 바로미터(barometer, 지표)이므로 우리는 ‘벌’을 살리고 보호해야 한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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