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수어’와 ‘농인’, 다양성과 소수자의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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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수어’와 ‘농인’, 다양성과 소수자의 관점으로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19.12.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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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벽허물기 수어권 요구 집회. 사진 /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장애벽허물기 수어권 요구 집회. 사진 /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아는 후배의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다.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신랑의 부모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신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들떠 있어야 할 신랑인 후배도 웃음기가 없었다. 신부의 고개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살피는 눈치였다.

후배는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신부는 디자이너이며, 청각장애가 있는 농인(Deaf)이다. 둘은 자원활동을 하면서 만났다. 후배는 학교 다닐 때 수어(手語)를 배운 적이 있어서 서툴지만 대화가 가능했다. 사진을 찍는 취미가 같아 둘은 주말이면 같이 다녔다. 그렇게 둘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결혼 약속도 했다. 

고난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후배의 부모는 듣지 못하는 며느리는 들일 수 없다며 펄쩍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 승낙은 받았지만 축복받지는 못했다. 양가 부모의 상견례 자리에서 신부의 부모는 후배의 부모 앞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결혼식을 했다. 수어통역사는 부를 수 없었다. 신부는 눈치껏 결혼식 순서를 따라갔다. 하지만 주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사람들이 어떤 덕담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신부는 시댁의 눈치 때문에 농인인 친구들을 결혼식장에 부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머저리’ 같다며 면박을 주었지만 신부는 웃어 넘겼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이 만들어 졌다. 이 법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공용어가 하나 더 생겼다. 한국어 이외에 한국수어가 공용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 속에 수어는 ‘당당한’ 언어가 아니다. ‘장애인의 손짓’이며, 음성언어를 못하는 이들의 ‘대체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수어법이 만들어진지 3년이 넘었지만 수어나 농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수어를 올바로 구사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농학교에 있고, 교육에서 수어가 배제되기도 한다. 이는 가정을 비롯한 일상생활은 몰론 직업 등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배는 직장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림을 꾸렸다. 그럼에도 후배의 신부는 ‘장애’로 인하여 결혼 생활이 당분간 삶이 녹녹치 않을 것이다. 시부모나 시댁들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신부는 ‘장애인’으로, ‘여자’로서 자신을 원망할지 모른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축복받지 못하는 것이 비장애인과 농인의 결혼 때문일까. 아니면 후배 부모의 사고가 시대에 뒤떨어서일까.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제는 ‘장애’를 ‘불행’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개인’이 짊어 져야할 짐으로 보지 않는다. ‘장애’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요, ‘사회 모두’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각도 바꿀 때가 되었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장애이냐 아니냐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수어는 소리가 아닌 시각(눈)의 언어이다. 농인들은 귀 대신에 눈으로 소리를 본다. 입이 아닌 손으로, 몸으로 말은 한다. 이러한 언어방식은 다른 사고체계를 만들고, ‘농문화’라는 별도의 문화도 공유한다. 이렇게 본다면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닌 우리 내부의 ‘다문화인’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이제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이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20,773쌍의 결혼하여 다문화인이 전체 혼인 비율의 9.2%(통계청, 2018)를 차지한다. 이러한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등을 합하면 국내 총 인구의 4.6%로 236만명(법무부, 2019)에 달한다. 이주민들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민을 넘어서서 우리 내부의 다양성도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농인들의 문제, 수어의 문제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장애’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농인’나 ‘수어’의 문제를 우리 내부의 ‘소수자’의 문제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후배의 가정과 같은 아픔도 사라질 것이다. 더 나아가 수어나 농인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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