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병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2020년 4월 '탑골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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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병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2020년 4월 '탑골의 봄'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4.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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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탑골공원 폐쇄, 급식 중단으로 힘겨워진 삶
실버영화관 운영 중지, 낙원시장 입구 축소 등으로 소일거리도 사라져
포장 노점 "이것마저 열지 않으면 어르신들 낙이 없다"
급식소 "우리라도 하지 않으면 굶으신다" 주먹밥 제공
지난 2월부터 폐쇄된 탑골공원 정문. 사진=임동현 기자
지난 2월부터 폐쇄된 탑골공원 정문. 사진=임동현 기자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탑골공원. 3.1운동의 목소리가 들렸던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어르신들의 공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탑골공원 골목을 중심으로 어르신을 상대로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고 낙원시장, 낙원상가는 추억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에게 옛날 영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르신들이 쉬고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고 옛날 파고다극장 자리에 위치한 포장 노점은 저녁 일과를 마친 이들이 부담없이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탑골공원은 2월부터 폐쇄됐고 낙원시장은 입구 한 곳만을 개방하고 모두 출입을 막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실 탑골공원 근처에서는 시행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오늘도 탑골공원을 찾는다. 복지관도 문을 닫고 끼니를 챙기기에도 힘든 상황,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오늘도 이들은 탑골공원에서 친구를 만나고 점심에 제공되는 급식을 챙긴다. 그렇게 탑골은 다시 봄을 맞았다.

3월의 마지막 날 저녁, 포장 노점의 불이 켜졌다. 사진=임동현 기자
3월의 마지막 날 저녁, 포장 노점의 불이 켜졌다. 사진=임동현 기자

3월의 마지막 날 저녁, 포장 노점의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이 곳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안주거리를 팔며 탑골공원을 찾는 어르신과 주변 상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곳이다. 5~6천원에 그날그날 달라지는 안주를 맛보고, '이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하지만 대낮부터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진상' 손님을 케어해야하는, 그런 곳이다.

이 곳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맞았다. 손님이 줄기도 하고 잠시 휴업을 하는 곳도 생겼다. 이 날도 2~3곳이 문을 열지 않았고 이전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많이 없었다. 다만 수년간 이 곳을 드나든 단골들이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기도 많이 힘들어졌죠. 그렇다고 장사를 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갈 곳이 없어져요. 가뜩이나 공원도 폐쇄되고 주변의 복지관이나 놀 수 있는 곳도 다 문이 닫혀있는데 여기마저 없다면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야해요? 그래서 문을 여는 거에요. 재료도 더 신선한 것으로 사고 있고요". 한 '이모님'의 말이다. 이 노점들이 있는 공간 주변에는 어느새 벚꽃이 활짝 피었다. 3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4월의 첫 날, 탑골공원 골목은 여전히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사진=임동현 기자
4월의 첫 날, 탑골공원 골목은 여전히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사진=임동현 기자

4월의 첫 날, 아침 9시부터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섰고 한 사람이 줄을 선 이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있다. 바로 이날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하는 급식을 받을 수 있는 번호표다.

지난 1992년부터 탑골공원의 어르신과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코로나19 여파로 서울 시내 주요 급식소들이 급식을 중단한 지금 이 곳은 어르신과 노숙자들에게 점심에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줄을 서기도 어렵고 식사를 같이 하기도 어렵기에 번호표를 미리 나누어주며 시간이 되면 바로 밥을 타갈 수 있도록 하고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몇 사람씩 끊어서 주먹밥을 타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번호표를 받은 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4땡(44)이네".

한 어르신이 '실버영화관 운영 중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한 어르신이 '실버영화관 운영 중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실버영화관'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건물도 역시 한쪽 입구만 개방을 했고 로비에서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매표소는 문이 닫혀있고 입구에는 관계자 한 사람만이 서 있었다. 실버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입구 책상에 놓여진 명부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면 운영이 재개되는 날 '운영 재개' 연락을 하고 초대권도 1장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옛날 영화 보시면서 많이 좋아하셨던 곳인데 이렇게 문이 닫히니까 안타깝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아셔서 오시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처음에는 '왜 문 닫냐?' 하며 많은 분들이 물으셨어요. 정말 어르신들 낙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지금 오시는 분들 보면은 전화 안 받으니까 걱정되서 오시는 분도 계시고, '설마 지금은 열었겠지'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분도 있어요".

오전 10시 반, 배식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줄이 서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는 주먹밥이, 한 곳에서는 빵과 두유가 급식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밥을 먹기 위한 줄이 어느새 길어졌다.

"아침부터 와서 여기서 밥 먹는 게 전부야". 고양시에서 오신 70대 어르신도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혼자 있으니까 끼니 챙기기도 힘들어. 여기선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니까. 아침에 와서 급식 받고 여기 계속 있다가 저녁되면 가는 거야. 그게 일과야. 요즘엔 소일거리가 너무 없어. 여기라도 오면 그나마 밥은 먹으니까..."

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11시 30분, 급식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관계자가 몇 사람씩 줄을 끊어 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들이 받은 봉지 안에는 급식소 사람들이 직접 만든 주먹밥과 단무지, 생수 한 병이 들어있었다. 소중한 한 끼가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동안 줄은 계속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스크를 미처 착용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마스크를 나눠주는 모습도 보였다.

"근처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사실상 서울 경기 전역에서 오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희가 오늘은 400개 정도 준비했는데 금새 동이 났어요. 조금씩 늘려가면서 했는데 매일매일 사람이 늘어나니까 추가로 만들다보면 곧 500개까지 준비해야할 것 같아요.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웃음)".

이 급식소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운영되는 이유. 바로 자신들이 없으면 어르신과 노숙자들이 굶어야하기 때문이다. "노숙자 분들은 당장 손에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코로나 사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에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분들은 '병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똑같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이런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곳이 아무 곳도 없어요. 우리라도 해야죠. 이분들에게 한 끼를 제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거동을 하지 못한 노숙인들에게 직접 주먹밥을 전달하는 것도 이들이 하는 일이다.

한 끼의 밥을 받기 위한 줄. 사진=임동현 기자
한 끼의 밥을 받기 위한 줄. 사진=임동현 기자

취재를 하는 동안 주먹밥을 기다리는 어르신에게 한 어르신이 자신이 받은 두유를 건네고 주먹밥을 받자 서로 주먹인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어렵지만 서로를 생각해주는 이들의 모습에서 아주 작지만 삶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2020년 4월, 탑골의 봄은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위험한 상황, 그러나 그렇게라도 삶의 끈을 잡으려는 상황, 탑골의 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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