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비대면 원격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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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비대면 원격진료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0.06.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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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료원 최초로 비대면 진료 운영시스템을 도입한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사진=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지방의료원 최초로 비대면 진료 운영시스템을 도입한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사진=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10년째 논란만 벌이던 원격의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로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현행 의료법(醫療法)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 하지 않고 처방전을 내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한 번 이상 대면 진료가 이뤄진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와 처방을 허용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CDSCHHQ 본부장: 국무총리)에 따르면 지난 2월24일-5월10일에 전국 3천853개 의료기관에서 26만여 건의 의료상담과 처방이 이뤄졌다. 전화 상담ㆍ처방 26만2121건 중 11만6993건(44.6%)은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그리고 11만995건(42.3%)은 의원(醫院)급에서 이뤄졌다. 원격진료가 대형병원 쏠림을 우려했지만 동네병원에서도 전화 상담과 진료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 법적 책임 소재, 대형병원 쏠림, 의료비 폭등 우려 등의 이유로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해왔다. 대한의사협회(大韓醫師協會, Korean Medical Association)는 “비대면 진료는 한계가 명확해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며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격진료는 1차 의료기관의 몰락과 국가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 전용 커뮤니티 사이트인 ‘인터옘디(Inter MD)’가 의사 507명을 대상으로 2019년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61.4%(매우 부정적 23.7%, 부정적 37.7%)에 달했다. 우려 이유 중엔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만 몰려 의원 경영이 악화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61.7%나 됐다. 한편 매우 긍정적 2.2%, 긍정적 12.7% 그리고 보통 23.7%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소비자원(韓國消費者院, Korea Consumer Agency)이 2018년 대도시ㆍ중소도시ㆍ군(郡)지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6%는 원격의료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으로는 ‘의료기관까지 거리가 먼 섬ㆍ벽지 주민 등’이 90.8%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최근 대법원은 대면진료(對面診療) 없이 전문 의약품을 처방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 대해, 상고심(上告審)에서 무죄(無罪)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5월 25일 밝혔다. 사건 내용은 지난 2011년 2월 의사 A씨가 지인의 부탁으로 환자 B씨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으로 상담한 후 비만 치료제 플루틴(Flutin)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줬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1심(審) 재판부는 전화 통화는 직접 진찰이 아니라고 보고 의사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화로 충분히 진찰이 이뤄졌다면 직접 진찰한 뒤 처방한 것이라 보고 죄가 없다고 했다. 이는 ‘직접 진찰’은 무자격자가 아닌 의사 자신이 진찰한다는 의미지 꼭 대면 진료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문(判決文)에서 직접 진찰(診察)에서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非對面)으로 진찰이 이뤄진 경우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 처방은 가능하지만,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1회 이상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대면 진찰이 한 번도 없었다면 환자 상태를 충분히 알 수 없어 ‘직접 진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정부는 인구 고령화, 의료 격차,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원격의료를 해법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가 없지만 2013년을 전후해서 각 주(州)별로 관련 법령을 마련하여 속도를 내고 있다. 2014년의 경우 전체 진료의 17%가 원격진료였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4년 회원국에 원격진료 확대를 위한 로드맵(road map, 종합계획) 작성을 권고했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원격의료를 본격화하여 노인복지시설과 의사가 부족한 지역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시설과 장비를 설치하고 있으며, 진료 비용도 100% 보험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남미(南美)의 칠레는 지역별 의료 격차가 극심해 원격의료 확대에 적극적이며, 에이즈(AIDS)와 암(癌) 환자도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의료인 부족, 도시와 낙후 지역 간 극심한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원격의료를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에 나섰다. 일본은 지난 2015년부터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이어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되자 올해 4월부터는 초진(初診) 환자도 원격진료를 할 수 있게 했으며, 범위도 만성질환, 알레르기, 폐렴 등으로 확대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은 올해 355억달러(약 4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5년 181억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14.4% 성장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전문가들은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성장세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1997년부터 원격의료에 메디케어(Medicare, 공공의료보험)에서 보험을 적용해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을 낮춰주기 시작했다. 이후 웨어러블(wearable) 모니터링 등 각종 원격의료 기기들이 개발되면서 2019년 시장 규모가 24억달러(2조9천억원)까지 성장했다. 특히 2014년부터 5년간 연평균 34.7%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은 2014년부터 원격진료를 전면 하용하고 전략적으로 육성한 결과 시장 규모가 약 39억달러로 미국을 넘어섰다. 중국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원격진료는 물론 고령층이 모바일 앱으로 간호사를 집으로 불러 간단한 치료를 받는 서비스도 활성화했다. 코로나19 사태로 11개로 늘어난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 중 가장 사용자가 많은 ‘핑안굿닥터’는 회원 수가 10배 가까이 늘어 총 11억1천만명이 이용했다.

일본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19년 현재 2억달러 정도이지만, 2018년부터 원격진료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으며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계기로 원격진료 시장이 앞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규제에 발이 묶여 시장 규모를 추정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이에 세계 최고 기술력도 국내애선 무용지물(無用之物)이므로 원격의료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 인성정보주식회사 제품이 미국 보훈처가 지난 2017년부터 퇴역 군인 8000명에게 제공하는 재택(在宅) 원격진료 서비스 ‘홈 텔레헬스’에 시용되고 있다. (주)인성정보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호주 등 총 16개국, 19개 파트너사에 원격의료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한 해 최대 5000개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원격진료 시범사업에 80대를 판매한 것이 전부다.

가슴에 삽입하는 전기장치인 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와 제세동기(除細動器)에는 실시간으로 환자 맥박 등 심장 상태를 감지해 원격으로 전송하는 기능이 갖춰져 있으며, 부정맥(不整脈)을 미리 감지해 원격으로 조정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원격진료가 의료법으로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들이 이런 기능은 끄고 환자에게 박동기와 제세동기를 삽입한다.

선진국에선 원격전송 기능을 3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의료 기술이 낮은 베트남 등에서도 이미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심장박동기 삽입 시술 건수는 2018년 4457건, 제세동기는 1366건에 달하며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심장 질환은 큰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이상 신호’들이 있으므로 원격진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이상이 생기면 원격으로 기기를 작동시키는 등 의사의 판단이 개입하는 ‘원격 모니터링’도 금지되어 있다. 이에 박동기나 제세동기를 삽입한 심장병 환자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6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와야 하므로 특히 고령 환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다. 이에 원격의료 대상을 ‘고위험 환자’로 한정하는 등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면 의료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원격의료는 상급 병원과 1-2차 의료기관이 진료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급 병원이 원격의료를 위한 플랫폼(platform)을 만들어 전국 의료기관이 함께 사용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며, 효율적인 의료 자원 배분은 결국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세계 원격의료(遠隔醫療, telemedicine) 시장이 내년이면 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IT강국 인프라를 기반으로 ‘K-방역’과 함께 시너지(synergy)를 낸다면 새로운 미래 먹거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遠隔診療)와 관련하여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 비대면 진료체계 구축이 시급하므로 국민(소비자)은 찬성하고 의료계는 반대하는 원격의료를 21대 국회에서 접점을 찾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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