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전세계 '전쟁 피해여성' 상징 되다
상태바
베를린 소녀상, 전세계 '전쟁 피해여성' 상징 되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04 10:34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테구 '영구 설치 논의' 결의안 의결, 철거명령 철회
일본 정부 압박 속 독일 시민들 목소리 내, 국내에서도 '반대' 한목소리
'일본에 핍박당한 한국 여성'에서 '전쟁에 유린당한 여성'으로 인식
독일 베를린 소녀상. 사진=AP
독일 베를린 소녀상. 사진=AP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독일이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존치하고 영구 설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항의로 한때 철거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베를린 내 시민사회와 국내외 시민단체들의 힘으로 독일의 생각이 바뀌면서 소녀상이 계속 존치하게 됐다. 소녀상이 일본 만행 규탄을 넘어 '전 세계 성폭력 피해여성의 상징'으로 자리잡아가는 모습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의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평화의 소녀상 영구설치 결의안을 의결했다. 녹색당과 함께 이 결의안을 발의한 좌파당의 틸로 우르히스 구의원은 "평화의 소녀상은 2차대전 중 한국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성폭력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전쟁이나 군사 분쟁에서 성폭력은 일회적인 사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며 근본적으로 막아야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바로 그 상징"이라면서 "소녀상이 우리 구에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관한 논의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소녀상 철거명령은 철회됐고 설치기한도 당초 내년 8월 14일까지에서 9월말로 6주 연장됐다. 또 구의회는 평화의 소녀상의 영구 설치를 논의하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9월 독일 현지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의 주관으로 베를린 미테구에서 제막됐다. 그러나 다음날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자국의 입장과 배치된다"면서 소녀상의 철거를 독일에 강하게 요구했고 일본 외무상이 독일 외무장관에게 화상회의로 소녀상 철거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정부 차원의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결국 미테구는 10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항의하는 의미로 알고 설치를 허가했지만 옛 일본군의 행위만을 거론해 일본과 베를린간 갈등을 초래했다. 국가 간 역사적인 문제에서 한쪽에 서는 것은 피해야한다"며 철거 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독일이 전쟁을 반성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일본의 로비에 말렸다' 등으로 독일을 비난하는 반응들이 속속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철거에 항의하는 독일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미테구는 "소녀상의 해체 시한은 더 이상 적용하지 않겠다. 행정법원의 평가를 기다리겠다"며 철거를 보류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국정감사에서 "일본의 소녀상 철거 시도가 계속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소녀상 철거는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 대한 일부의 비난도 잦아들었다.

국내에서도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지난 10월 14일에는 정의기억연대 문제로 한때 사이가 갈라졌던 이용수 할머니와 이나연 정의연 이사장이 한 자리에 앉아 기자회견을 통해 "소녀상은 역사의 증거"라며 소녀상 철거 철회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물론 지자체까지 소녀상 철거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특히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 시장은 "소녀상 설치 배경에는 지난해 나고야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있다. 거기에 전시된 소녀상과 베를린의 소녀상의 작가가 같다는 게 그 이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소녀상이 전시됐지만 3일 만에 주최 측은 '안전상 이유'를 내세워 소녀상 전시를 중단했다가 10월에 다시 재개했는데 가와무라 시장은 당시 전시 재개의 반발하며 전시장 앞에서 농성을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이같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베를린 소녀상을 존치한 것은 이 소녀상을 '일본에 핍박당한 한국 여성'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희생되어야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소녀상을 애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게 느껴져 놀라곤 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전쟁을 안 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여성의 인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독일이 전범국가라 전쟁 중 성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금지되어 있는 측면이 있는데, 소녀상 영구설치 논의 등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파헤치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소녀상이 이제 세계적으로 '전쟁 피해여성'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현지 시민들도 소녀상 영구 설치를 환영하고 있어 일본의 압박이 이제 힘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연달아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소녀상의 울림은 이제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증명된 셈이다. SW

ldh@economicpost.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