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성출혈열(流行性出血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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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출혈열(流行性出血熱)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2.07.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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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 선구자 이호왕 박사
이호왕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고려대의료원
이호왕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고려대의료원

[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한타바이러스(Hanta Virus)’를 처음 발견한 우리나라 의학계 선구자이신 이호왕(李鎬汪, Ho Wang Lee)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님이 노환으로 7월 5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호왕 박사는 지난해 노벨(Nobel) 의학상 유력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된 상위 0.01% 연구자를 발표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Clarivate)는 ‘2021년 피인용 우수 연구자’ 16명을 선정하여 지난해 9월 23일 발표했다. 

클래리베이트가 생리학·의학, 물리학, 화학, 경제학 분야에서 선정한 16명은 미국 9명, 일본 3명, 그 밖에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싱가포르가 각각 1명씩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 0.01%에 해당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클래리베이트가 지목한 360명 중 59명이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 생리학·의학상은 생리학(生理學) 또는 의학(醫學)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며, 190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호왕 교수는 말라리아(Malaria), 에이즈(AIDS)와 함께 세계 3대 전염성 질환으로 알려진 유행성출혈열(流行性出血熱, Epidemic Hemorrhagic Fever)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이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병원균을 ‘한타바이러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타바이러스는 한국인이 발견한 최초의 병원미생물로 1950년대 6·25남침전쟁 당시 격전지이자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지역인 한탄강(漢灘江) 이름을 딴 것이다.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는 유행성출혈열의 원인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RNA 바이러스의 한 과로, 이 가운데서도 오르소한타바이러스속(Orthohantavirus)을 가리킨다. ‘오르소-(ortho-)’는 ‘정통’, ‘본래’라는 뜻으로, 근연종(近緣種)이 발견되었을 경우 원래의 종을 특기하는 뜻을 가진다. 1976년 이호왕 박사가 야생 등줄쥐의 폐(肺) 조직에서 유행성출혈열의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최초로 분리에 성공하였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1989년 유행성출혈열 진단법을 개발하고 1990년에는 예방백신인 ‘한타박스(Hanta Vax, 신증후 출혈열 백신 )’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1991년 상용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한타박스는 한국 신약 1호로도 유명하다. 이호왕 교수는 병원체 발견에서 진단, 백신개발까지 완료한 세계 최초의 과학자로 ‘한국의 파스퇴르(Pasteur)’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연구 업적은 전 세계 대학에서 배우는 의학 및 생물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지난 2016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신인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경제신문이 진행한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근현대 대표 과학기술인’ 조사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물리학자인 이휘소(1935-1977) 박사가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로, 그리고 이호왕 박사를 두 번째로 많이 꼽았다. 

이호왕 박사가 유행성출혈열 병원체를 발견하기 전까지 당시 정체불명의 괴질(怪疾)로 유명했다. 191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뒤 2차 세계대전(World War II)과 6·25전쟁(Korean War)을 거치며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인체실험까지 벌였고, 미국은 노벨상 수상자 2명이 포함된 연구진 230여명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정체를 밝히려고 애썼지만 감염 경로와 원인 병원체를 찾지 못했다. 

6·25전쟁(1950-1953)이 한창이던 때,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 일대 중부전선에 주둔한 미군(美軍) 등 유엔군 3200여 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에 걸려 피를 쏟고 쓰러졌으며, 그중 수백명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하하던 중공군이 한강(漢江) 이남 지역으로 넘어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병영(兵營) 안에 괴질이 돌아서였다. 피해가 심각하여 미군과 중공군은 이를 상대방이 만든 생물학무기(生物學武器)라 여기고 세균전(細菌戰)을 의심했다. 

이 괴질의 원인을 20여 년이 지난 1976년에 이호왕 박사가 밝혀냈다. 즉,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한 등줄쥐(Apodemus agarius)에게서 나온 바이러스가 ‘한국형 출혈열(Korean Hemorrhagic Fever)’, 즉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임을 밝혀내고, 그 지역을 흐르는 한탄강 이름을 따서 ‘한탄 바이러스(Hantaan Virus)’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편 도시에서는 서울의 시궁쥐(Rattus norvegicus)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여 ‘서울 바이러스(Seoul Virus)’로 명명하였다.

한탄강(漢灘江)은 대한민국과 북한에 걸친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의 강으로 임진강의 지류이며, 길이는 136km이다. 북한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군과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에 합류한다. 이름의 유래는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 당시 도망가던 도중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했다는 민간전승(民間傳承)에서 유래했다고 잘못 알려졌다. 실제로는 크다는 의미의 순 우리말 ‘한’과 여울 ‘탄’의 ‘큰 여울이 있는 강’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대탄강(大灘江)으로 적혀 있다. 

등줄쥐(black-striped field mouse)는 쥐목, 쥐과에 속하는 설치류(齧齒類)이며, 검은 줄이 앞머리에서 등의 가운데를 따라 꼬리의 밑동까지 이어져 있다. 잡목숲, 숲의 가장자리, 개천가, 논과 밭, 갈대밭 등에서 서식한다. 습한 곳을 좋아하며, 주로 곡식이나 씨앗을 먹지만, 곤충이나 무척추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시궁쥐(brown rat)는 집쥐라고 하며, 생쥐와 더불어 실험용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실험보고서나 논문에서는 래트(rat)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성체의 크기는 20cm-25cm 정도이며, 수컷이 암컷보다 좀 더 큰 편이다. 일반적으로 실험용이나 애완용으로 사육되는 ‘래트’는 시궁쥐를 품종 개량한 것이다. 시궁쥐는 미각이 상당히 발달하여 식품 속의 불순물이나 오염물질을 쉽게 감지한다. 

시궁쥐 원산지는 북중국 평원지대와 내몽골, 외몽골 남부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의 족 중에서 서울 바이러스의 숙주로, 발견 경위도 서울에서 잡은 시궁쥐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발견지의 이름을 따서 ‘서울 바이러스’라고 붙였는데, 후에 서울 바이러스가 전세계구란 것이 밝혀졌다. 이에 서울 바이러스를 ‘도시형 한탄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행성출혈열(신증후군출혈열)의 주요 발생 지역은 한국, 중국, 북유럽, 북미 등 거의 북반구(北半球) 전역이다. 전파경로는 감염된 쥐의 소변, 대변이 말라 공중에 바이러스가 부유하여 이를 흡입하면 호흡기를 통해, 그리고 쥐에 물리면 쥐의 타액(唾液)을 통하여 감염된다. 이 질병은 제3군 법정전염병(法定傳染病, legal communicable disease)에 지정되었으며, 이호왕 박사가 개발한 백신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중후군출혈열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었다. 

한탄 바이러스는 한국인이 발견한 최초의 병원성 미생물이다. 이호왕 박사의 업적은 현재 모든 의학, 생물학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이호왕 박사 기념비> 제막식이 경기도 포천에서 2007년 10월에 열렸다. 이호왕 박사는 미 국방성(Department of Defence) 산하 육군성(陸軍省)에서 주는 ‘최고시민공로훈장’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 학술원장, 고려대 의과대학장, 세계보건기구(WHO) 유행성출혈연구협력센터 소장, 대한바이러스학회 초대회장 등을 지냈다. 

이호왕 박사는 1987년 인촌상, 1992년 호암상, 1995년 태국 프린스 마히돌상, 2001년 일본 니케이 아시아상, 2002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2009년 서재필의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추대됐으며, 2002년 미국 학술원(NAS) 외국회원, 2009년 일본 학사원 명예회원에 선정되어 국내외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이호왕(李鎬汪)은 1928년 10월 26일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으며, 함흥의과대학을 다니다 월남해 195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육군 중위로 복무한 후 정부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59년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미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는 어린아이들이 대부분 걸리는 일본뇌염(腦炎)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연구할 때 목적이 있어야 한다. 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1959년 귀국하여 일본뇌염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나 1969년 일본뇌염 백신이 개발되면서 그는 연구 분야를 ‘유행성출혈열’로 바꿨다. 미국은 노벨상을 받은 박사 2명을 포함해 연구자 230여 명을 한국으로 보내 연구를 했으나 여전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호왕 박사는 1969년 미 육군성 지원을 받아 유행성출혈열 연구에 돌입했으며, 동두천시 송내동에 연구소를 마련하여 한탄바이러스 연구에 매진했다. 이호왕 박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한탄강 유역 군부대 주변에서 들쥐를 사냥하다가 무장간첩으로 오인돼 경고사격을 받고, 동료 연구원이 감염돼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등 위기와 실패가 많았다”고 했다. 1981년 서울 마포구 한 건물에서 잡은 집쥐에서 ‘한탄 바이러스’ 친척뻘 되는 ‘서울 바이러스’도 찾아냈다. 

1989년에는 국내 제약사 녹십자 후원을 받아 한탄 바이러스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도 개발했다. 한타바이러스 백신은 초기 접종 1회, 1개월 후 2차 접종, 13개월 후 3차 접종의 3번의 접종을 질병관리청은 제시하고 있다. 백신 부작용으로 국소 증상은 국소발적, 종창, 동통, 소양증, 색소침착 등이며, 전신반응은 근육통, 관절통, 오한, 오심, 두통, 현기증, 권태감 등이 나타나지만 통상 2-3일 중에 소실된다. 아직까지 인간 대 인간 감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 발견자가 진단법과 예방 백신까지 개발한 것은 이호왕 박사가 최초 사례다. 지금도 휴전선 일대에 근무하는 군인과 주민들은 한탄 바이러스 예방주사를 맞는다. 이호왕 박사의 논문은 연구가 독창적이고 인류에 높은 공헌을 했다. 이호왕 박사는 이러한 공로로 지난해엔 노벨 의학상 수상 예측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도 동두천시는 소요산국민관광지 내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3층에 <이호왕박사 기념관>을 지난 2012년 6월 28일에 개관했다. 기념관에는 이 박사의 생애 및 연구업적, 바이러스 종류 등에 대한 영상물, 이 박사 연구 당시 과학 기자재, 각국에서 증정한 기념품, 송내동 연구소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호왕 박사님 별세에 즈음하여 동두천시는 이호왕박사기념관에 고인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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