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의연과 정체성 정치, 그리고 유다
상태바
[기자수첩] 정의연과 정체성 정치, 그리고 유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5.26 12:09
  • 댓글 0
  • 트위터 422,09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2차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대구=배성복 기자
지난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2차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대구=배성복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지난 25일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92)는 대구에서 고령의 몸을 이끌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을 비판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30년 간 이용당했다”는 이 할머니의 눈물과 호소를 전국의 방송사들이 앞다퉈 카메라로 기록했다.

이 할머니는 과거 정대협에서 공동대표를 맡으며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로 활동하는 등, 일본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 및 시민단체 활동에 앞장섰다. 위안부 문제 해결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한국 시민사회는 위안부 문제를 스스로 각성했으며, 동시에 일본의 본격적인 역사 왜곡, 극우 행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위안부 피해자는 단순 피해자를 넘어 반드시 기억돼야할 한국사의 산 증인이자, 한국 시민사회와 역사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도덕적 가치로 섰다. 그런 분의 입에서 정의연 전 이사장이던 윤미향 당선인을 비롯, 정의연·정대협에 대한 회계·대우 폭로가 나온 것이다. 심지어 세상을 뜨신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에서도 정의연에 대한 폭로가 매일매일 언론을 통해 새로이 밝혀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한국 시민사회에 준 충격은 단순 아연실색할 정도를 넘어섰다. 일본 극우, 친일 극우에 맞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앞장서왔다는 정의연의 행보가 숭고하게 여겨질 만큼 그 충격도 배로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폭로 이후 시민단체들과 추종 세력이 보여준 추악한 자화상이다. 윤 당선인을 비롯한 정의연 관계자들은 이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억과 증언에 대해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부정했다. 고령과 트라우마 속에서 전쟁범죄의 실상을 증언한 이들을 보호했다는 단체가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다른 시민단체들-특히 여성단체들은 단순 범죄도 아닌 전쟁범죄 피해자의 호소를 부정하고 “정의연을 지지한다”며 그들만의 연대를 이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슬로건을 부르짖어온 집단이 외려 모순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의연·정대협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성찰하는 대신, ‘토착왜구’·친일이라는 프레임으로 그들의 부정에 가세하는 지지층도 있다. 정의연·시민단체·지지층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모순과 이율배반을 자처하며 떠받드는 꼴이다.

그 실태는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채팅창에서 수많은 네티즌이 이 할머니를 향해 끔찍한 망언을 쏟아냄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쩌다 도덕적이고 진보적 행보를 걷는다는 시민단체와 이를 응원한다는 지지층이 이런 수준까지 타락했을까.

단순 스스로의 허물을 인정치 않는다는 ‘자기부정’은 사태 전반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순 없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로 본다면 사태를 큰 폭에서 설명 할 순 있겠다. 현 정권은 촛불혁명 이후 ‘노무현 정신을 계승했다’고 천명한 바 있다. 덕분에 힘의 원천인 역사적 정통성과 도덕적 정당성은 극우잔재와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해 국회 180석이란 막강한 입법 권력까지 손에 넣게 해줬다.

이에 대한 정권 지지층의 자기 투영과 추종은 정체성 정치와 공명할 때, 거기에 흠을 가하는 행위는 폭로자가 누구일지라도 적극적으로 추종·옹호하고 비판을 매도할 수 있다. 그것이 극우잔재라는 콘크리트 지지층-태극기부대와 지극히 유사한 모습을 띄어도, 할 수 있는 행동의 수준이 어떠할 지라도 말이다.

정의연 사태로 시민단체의 자기 존재이유인 정당성, 시민사회의 신뢰, 스스로 내건 도덕적·절대적 가치는 금전과 권력에 팔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숭고한 투쟁의 가치, 세기를 넘어 기록돼야 한다는 역사가 팔렸다.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를 팔아 돈과 감투를 챙겼다는 지탄에서 유다가 신의 아들을 팔아 은화 30닢을 챙긴 모습을 본다. SW

hjy@economicpost.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